대니가 학원에 들어갔다. 근처 LAND MARKET이라는 곳에서 장을 보고 (주부의 삶은 어디를 가나 변함이 없다.) 근처 카페에서 책을 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책을 엄청 좋아하는 책벌레 정도는 아닌데 굳이 여행길에 책을 가져온 것은, 책을 읽으면 외롭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나의 여행길에는 가벼운 에세이가 동행한다. 그리고 그것을 읽고 있으면 뭔가 사람과 대화를 하는 느낌이 든다. 대부분의 에세이가 작가들의 이런저런 상념들을 적은 것이라 ‘너는 이렇게 생각해?’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아, 이건 나랑 생각이 같네’와 같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 든다.나도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거나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하는데 주로 생각 없이 웃고 싶거나 시간을 때우고 싶을 때 많이 이용한다.
실제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그것을 기반 삼아 같이 웃거나 분노하거나 심지어 슬퍼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서로 교감이 이루어지고 이것을 통해 행복해지고 또 혼자가 아니라는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다. 앞서 책을 읽으며 나는 책과 대화하는 느낌이라고 얘기하긴 했지만 당연히 그게 실제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의 교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책 속의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 지겨워지면, 핸드폰을 켜고 재미있는 동영상을 보거나 필요한 정보를 찾으며 가볍게 주위를 환기시킨다. 그러다 보면 어느 정도 외로움을 잊게 된다. 사실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기본적으로 내가 책을 아주 싫어하지 않는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사뭇 여행길에 책을 가져가는 다른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하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나는 어디를 가든 책과 핸드폰을 함께 들고 다니는데 요즘 책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워낙 적어서 그런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섣부르게 책만 읽는 범생으로 또는 책을 좋아하는 고지식한 사람으로 비치기도 한다. 분명 나는 고지식한 범생은 아닌데 말이다. 이러든 저러든책과 핸드폰이 함께하는 나의 보니파시오의 삶은 매우 만족스럽다.(겨우 일주일이기는 하지만....)
카페에서 생각도 하고 책도 읽고 유튜브도 몇 개 보니 금방 대니를 데리러 갈 시간이 되었다. 가까스로 끝나는 시간을 맞춰 도착했는데 대니가 이미 로비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이 그랩을 빨리 잡으라며 수업을 일찍 끝내주셨단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그랩 앱을 열고 콜을 했는데 ‘계속 드라이버 검색 중’이라는 멘트만 떴다. 어쩔 수 없이 MARKET MARKET에 가서 오토바이를 타기로 했다. 그랩 부스에 도착하니 낯익은 안내원이 있었다.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오토바이를 잡아달라고 하니 몇 번 이곳을 이용해서 그런지 목적지를 묻지도 않고 알아서 잘 잡아주었다.
저녁은 낮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다 먹지 못해서 포장해 온 음식을 데워서 먹었다. 여러모로 장로님께 감사했다.(^^) 외국에 있다 보면 누구든 의지하고 싶은 감정이 자꾸 생긴다. 그런 마음을 이용해서 같은 한국 사람들끼리 많이들 서로 서로 사기 치기도 당하기도 한다. 사실 나도 그 점을 많이 걱정하며 필리핀에 왔다. 옛날 20대 말쯤에 외국에서 어학연수 받았던 경험까지 모두 합해 2년쯤 외국에서 살아본 결과 그냥 자기 하기 나름인 거 같다. 사람을 무턱대고 너무 믿으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믿을 사람 하나 없이 타지에서 혼자 견디는 것 또한 힘들다. 적당히 믿고 의심의 끈을 놓지 않으면 크게 사기를 당하거나 하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사실 나도 모르게 사기를 당했을 지도 모를 일이기는 하지만 정말 큰 금액을 한꺼번에 날려버리거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거나 했던 경우는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나름 큰 사고 없이 잘 살았고 지금도 잘 적응해 살고 있다.
이젠 저녁을 먹고 넷플을 보는 게 정해진 루틴이 되었다. 내일은 토요일인데 한국에 있었을 때 온라인으로 수업했던 필리핀 현지 화상 영어 선생님을 이곳 보니파시오에서 만나기로 했다. 왕복 교통비가 1,600페소나 드는데도 이곳 보니파시오까지 우리를 보러 온다고 해서 참 고마웠다. 그 이야기는 다음페이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