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희 Nov 21. 2023

너는 내가 아는 한 글을 제일로 잘 쓰는 사람

나는 몰랐지, 그 뒤에 사람이 있다는 걸

너의 글을 보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한 글 커뮤니티에 네 글이 떴다. 나는 잘 쓴 글을 보면 천불이 난다. 나는 사람의 글에 매료된다. 너의 글도 대번에 그런 것이었다. 일기와 에세이 중간에 있던 네 글은 기교도 사색도 완벽했다. 너는 그 글 커뮤니티에 그런 글을 몇 백개 넘게 썼었고 나는 며칠을 걸려 그 글들을 거진 다 읽었다. 글을 읽으면서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너무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닉네임 뒤에 가려진 너를 얼른 보고 싶었다.


일단은 그 글 커뮤니티에서 활동을 하기로 했다. 그래야지 너랑 접점을 만드므로. 나는 당시 네 글에 흠뻑 매료되어 있었다. 당시의 나는 사람과 친해지는 방법을 몰랐으므로 친구가 되기 전에 일단 꼬시고 봤다. 작가님 차라도 마셔요. 내가 널 무작정 불렀다. 그리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역까지 달려갔다. 거기에는 다소 왜소하고 깡마른 남자가 검은 옷을 입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년 생이세요? 88년 생이예요. 글을 그렇게 잘 쓰는데 나이가 나랑 같아서 충격을 받았다. 내 꼬심이 성공했는지 어쨌든지 아무튼 우리는 어찌어찌 사귀게 되었다. 잘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카페에 앉아 하루종일 네 얼굴을 바라보며 글 이야기를 했던 기억은 난다.


너는 아는 것이 아주 많았다. 영화 드라마 책 음악 가리지 않고 박식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만큼의 인풋이 있으니 그만큼의 아웃풋이 나오는 건 당연한 거였다. 너는 아낌없이 나에게 네가 알고 있는 예술들을 소개해 주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게 된 음악가 <뷔요크>를 소개받은 것도 너 덕분이다. 나는 종종 네 mp3를 빌려서 네 음악들을 다 흡수했다. 그리고 컴퓨터를 켜면 새로고침을 눌러 네 글이 올라오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나는 네 글의 가장 열정적인 팬이었다.


곧 글 커뮤니티에선 나와 네가 공식 커플처럼 되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나와 네 글을 비교했다. 커뮤니티 안에서도 제일 잘 쓰는 글은 네 글이었고 나는 후순위 채권 같은 존재였다. 어떤 사람은 나와 네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제희 씨는 애인 분에 비해 글을 못 쓰는 것 같아요.라고 면전에서 말했을 정도니까. 그래서 나는 너를 몹시 좋아했지만 몹시 질투했다. 이 글을 쓰는 아직도 나는 너처럼 산문을 잘 쓰는 사람을 보지 못했으니까. 널 만나고 처음으로 보이지 않는 재능의 벽의 단단함을 손 끝으로 확인한 기분이었다. 재능이 깡패야.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즈음 언젠가는 울듯이 너에게 물었다. 너처럼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 나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돼. 네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다독 다작 다상량.


우리는 기형적인 관계가 되어갔다. 나는 당시 네가 아니라 네 글을 사랑했다. 그래서 인간인 너를 미처 바라보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만화책의 말처럼 동경은 이해와 가장 먼 감정이라고, 너는 거기서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나는 너만 보면 글을 제대로 쓰라고, 어디 공모전이나 이런 데에 내어 달라고 다른 지인과 함께 애원했고 거기서 너는 점점 쓴웃음을 지으며 나에게서 밀려났다. 나는 네가 너무 삶에 자포자기를 한다고, 무기력하다고 생각했고 내 미래를 점쳐 보았을 때 행복한 미래상을 그릴 수가 없었다. 나는 당시 가난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너와의 미래에서 그런 걸 봤다. 꿈도 희망도 없는.


나는 너를 상처 주었다.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너를 공적인 장소에서 애인으로 대접하지 않기도 했다. 너는 그런 부분에서 상처받았다. 어느새부턴가 너는 글을 쓰지 않게 되었고 나 때문만은 이유가 아니었겠지만 그제까지 썼던 네 글들을 지우기 시작했다. 글 안 쓸 거야? 마지막 즈음에 내가 물었던 것 같다. 응. 너는 간결하게 말했다. 그리고 너는 그 이후로 절대로 글을 쓰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어떻게 헤어졌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최악의 방식으로 헤어졌다는 건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십 수년이 지나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친구보다는 지인. 몇 달에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그런 건조한 관계가 되었다. 나는 내가 전업 작가를 결심하고 처음 브런치에 합격한 날 바로 너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나 이제 전업 작가한다. 하지만 너같이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전업 작가를 하는 게 옳다. 나는 네 재능이 부럽다 등등. 지금 생각하면 나는 계속해서 너를 상처 입히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의 비틀린 마음 한편에 네 글에 대한 질투와 선망은 죽을 때까지 꺼지지 않을 것이다. 나도 이게 잘못된 건 안다. 첫 단추가 잘못되었다. 그런데 그 잘못된 첫 단추가 아니었으면 우린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 내가 사랑해야 했던 건 네 글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네가 일을 마치고 품에 식지 않은 치킨을 담고 나를 향해 눈부시게 웃으며 달려오는 모습들, 네가 나를 위해서 선물해 준 고등어라는 작은 시,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던 나날들. 그런 것들을 사랑해야 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인간보다는 글에 미쳐있는 인간이라 그걸 몰랐고 인간인 너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모양 이 꼴로 헤어졌고 다시는 친구 비슷한 것도 되지 못한 게 아닐까. 친구라고나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정말로 네게 개새끼였다.




이 글을 쓸 때 저는 아직도 그 친구가 글을 포기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 자체를 바라봤어야 한다는 양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큼의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글을 써야 한다고 믿어요. 좋아요, 구독, 댓글 모두 감사드립니다.


이전 02화 첫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