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사랑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 나는 공부도 썩 잘하지 못하고 학교에서도 겉도는 학생이었다. 그런 나에게 너는 모든 걸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좋은 친구들, 좋은 성적, 화목한 가정. 너는 웃으면 앞니가 토끼처럼 튀어나왔는데 그것마저 귀여웠다. 나는 너를 몹시 부러워하고 선망했다. 하지만 너는 모든 걸 가지고 있어서 성격이 오만한 편이었다. 일부러 사람을 무시하는 것 같은 행동을 하는 일이 많았다. 나는 가진 게 없어서 네 앞에서 항상 비굴해졌다. 우리의 관계에서 나는 을이었고 너는 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네게 전화가 왔다. 얼굴만 아는 동창생이 축구를 하다가 갑자기 심정지로 죽었다고 했다. 담담하게 이야기하던 네 목소리가 폐곡선처럼 잦아들었다. 그리고 너는 흐느끼면서 울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너같이 오만한 사람이, 누군가를 향해 운다는 걸 상상할 수 없었다. 가슴속이 울렁거렸다. 너는 네가 죽으면 이렇게 울어줄까?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전화가 끊어지고 신호음만 가던 걸 한참 동안 듣고 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네가 너무 좋고 너무 싫었다. 견딜 수 없어서 이 관계를 쫑내더라도 네게 상처를 주고 싶었다. 하루는 전화를 잡고 폭언을 했다. 너는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쓰레기라고, 너는 뭣도 아닌데 나에게만 왜 그렇게 대하냐고 악을 썼다. 그러자 너는 말이 없었고 문자가 하나 왔다. 십 수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 문자를 기억한다.
[나 너 사랑했다. 지금도 사랑한다.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라. 잘 지내라.]
그때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분명 나는 이 사람을 찔렀는데, 이 사람은 나를 안아준 느낌이 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네가 나를 사랑한다니.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살면서사랑한다는 말을 그런 식으로 들으니까 반쯤 미칠 것 같았다. 헤어지는 순간 시작한 첫사랑이라니 도대체 가망이 없었다. 그 당시 나는 고흐의 일화를 떠올렸다. 사랑하는 창부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손을 타는 양초 위에 두었다는 고흐처럼, 나는 손이고 뭐고 다 불에 데어도 좋으니 너를 다시 한번만 만날 수 있으면 모조리 내 몸을 태울 것 같았다. 인생에서 누군가를 평생 사랑할 수 있는 총량이 있으면 지금 다 쓰겠다고 신께 빌었다. 그만큼 나는 절박했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폭풍우가 쳐도 내 일상은 평화롭게 흘러갔다. 그러나 이후 내 인생은 모조리 너를 중심으로 돌았다. 나의 모든 공책에는 네 이름과 고백으로 채워졌다. 그걸 보기 위해 내 노트를 빌려가는 동창도 있었다. 내 친구 가족 친척 주변 사람들은 모두 너를 알았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집착이든 무엇이든 상관없이 내 마음속에서는 거대한 동력이 흘러갔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때는 그 사람의 장점이 아니라 그 사람의 결핍을 이해했을 때였다. 나는 네가 독재차처럼 너만의 성에서 사람들을 무시할 때, 두려운 게 무서워 성에 해자를 깊게 판다는 것을 언젠가 알았다. 떵떵거리는 네가 언젠가 누군가의 죽음에 슬퍼할 때처럼 그 성 안에서 어깨를 둥그렇게 말고 울 것을 생각했다. 그런 것들을 모조리 사무치게 알게 된 나는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너는 전라도 광주에 살았고 나는 경기도에 살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생전 말도 안 걸던 동창에게 7만 원을 빌려 네가 있는 집으로 갔다. 추운 겨울이었고 덜덜 떨었지만 나는 너무 좋았다. 내 프렌치 키스는 처음으로 너와 함께 했다. 내 온몸에 전율이 돋았다. 키스가 끝나고 네가 말했다. 이제 끝이야.
시간이 지났다. 공부를 잘하던 너는 국립대 약대를 갔다. 이후 나는 너를 두어 번 보았다. 어느 날은 네게 소포가 왔다. 토익과 영어 수학 책들이었다. 이런 것들을 왜 보내냐고 물으니까 네가 대답했다. "나는 SKY 아닌 여자친구는 안 만나." 너는 여전히 오만했다. 그때 깨달았다. 너는 나를 위해 울어주진 않겠구나. 그때 나는 좀 환멸을 느꼈던 것 같다. 너는 내가 아니라 보기 좋은 키링이 필요했구나. 물론 국립대 약대를 갔으니 너는 그런 급이 맞는 애인을 만들고 싶었겠지. 지금은 그렇게 상정할 수 있는데 그때는 모욕감이 들었다. 그때 나는 소포의 박스를 고스란히 접어 내 마음과 함께 반송했다.
몇 년이 지났다. 나는 호주에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네 카카오톡을 봤는데 웨딩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정말로 이젠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눈물이 툭툭 떨어지는 걸 견딜 수가 없었다. 무표정으로 울었던 것 같다. 쥐어짜는 고통도 없이. 나는 아직도 그때의 감각을 잘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사랑이었던가. 언젠가 신에게 빌었던 것처럼 사랑의 총량이 다 끝났던 건 아닐까. 바닥에 고여있는 마지막 진심이었던가.
지금 그 친구는 부족함 없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좋아요와 구독 눌러주시면 제가 매일 글 쓰는데 힘이 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