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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희 Dec 12. 2023

용서를 계량하는 법

나에겐 한 때 가족이었던 새아버지가 있었다. 지금은 남이다.

사실 어머니와 연관된 이 주제를 쓰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지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결국은 쓰기로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이 글에서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화두가 아주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용서이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새아버지는 가족이었을 당시 경제적 무능력자였다.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방 안에 갇혀 글만 쓴다고 세월을 보냈다. 그래선지 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막내 동생이 가게에서 껌인지 뭔지를 그냥 들고 왔다. 그래서 내가 돈에 대해 설명하자, 아이에게 그런 걸 설명하면 안 된다며 나에게 불같이 화를 내던 기억이 있다.


그 사람은 나에게만 화를 냈다. 물론 내가 사춘기를 엿같이 겪었던 것도 요인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컴퓨터 모니터를 던지는 것이 정당화될 순 없을 것이다. 휴일에 내가 컴퓨터를 하러 들어가면 그 사람은 고함을 지르면서 나에게 물건을 던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방문을 부수기도 했다. 내가 용서할 수 없었던 점은 바로 그 사람이 강약약강이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내 동생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집안에서 서열이 제일 낮았던 나에게만 폭력이 쏟아졌다. 나는 당시 학교에서도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나를 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가장 분노했던 것도 이 지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이 집에서 사라졌다. 그 이후로는 볼 수 없었다.


나는 사실 그 이후 아주 오랫동안 그 사람을 기다렸다. 그 사람이 나에게 사과를 하러 오기를. 제희야. 내가 그때 미안했다. 나도 삶에 몰려 있어서 가장 약한 너를 괴롭혔다. 그 점이 미안하다. 뭐 그런 걸 기대했다. 바보 같지만 그 사람이 우리 가족들을 버리고 도망간 한참 이후까지 나는 그 사람을 오랫동안 가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가족이 아니더라도 뭐, 인간이라면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잘못했으면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서 그 사람이 운영한다는 카페를 찾아 헤맨 적도 있다. 결국 그 카페가 마침 휴일이라 들어가서 사과를 받아내진 못했다. 물론 내가 정말로 사과를 받아내겠다고 그 카페에 갔었으면 어머니가 많이 곤란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당시의 나는 너무 어렸다.


그리고 서른이 지났다. 어머니가 그 사람을 처음 만난 나이가 되고 보니 문득 그런 질문이 들었다. 그 사람도 처음부터 괴물이었을까. 아니었지 않았을까. 그때부터 나는 그 사람이 언젠가 괜찮았다는 증거를 모으기로 했다. 나는 죄와 공을 정확히 계량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양팔 저울 한 편에 죄를 올려놓고 맞은편에 공을 정확히 올려두어 그 무게의 차이에 따라 내 행동이 변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 사람의 죄가 중하다고 그 사람의 선善을 무시한 채 모조리 악마로 만들어버리는 일은 하지 말자고.


그러자 천천히 사소했던 일상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처음에 집에서 제과제빵을 했다. 우리가 초등학교에서 돌아오면 빵을 만들어두고 우리들에게 먹였다. 그보다 어렸을 적에는 배드민턴을 같이 쳐 주기도 했다. 우리 집 가훈을 만드는 일을 두고 “즐겁게 살자”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처음부터 그 사람이 괴물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노력했던 것이다. 그런 사소한 것들을 생각하니 어느 날 나는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람도 집에 갇혀서, 자신의 무용함에 질려 괴물이 된 것이라고 나는 이해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사과를 하든 하지 않든 이미 이 일은 내 마음속에서 잊을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소용돌이가 나 자신을 잡아먹는 일을 끝내는 일이다. 상대방이 용서를 구하든 구하지 않든 상관없다. 다만 나에게서는 완전히 타인의 일이 되는 것. 어떤 용서는 사랑으로 한다지만 내 마음속의 용서는 조악해서 무심無心으로 끝난다. 이제는 그 사람이 어떻게 되든 정말로 괜찮다. 이제 나는 그 사람에 대해서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용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을 용서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제 경우에는 사람을 용서하니까 마음속에서 후련해지는 것이 있더라고요. 좋아요 구독 댓글 모두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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