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까미노
2012. 8. 3 (금)
바다를 보러 피니에스테라까지 가기로 마음먹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지막 지점인 성당에서 마무리 짓고 버스를 타고 가지만 그래도 걸어가는 게 더 의미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우선 해보았다. 이렇게 된다면 계획했던 일정보다 더 빨리 걸어야지 도착할 수 있다. 오늘부터 그 유명하다는 메세타 고원이 시작됐다. 아무것도 없고 건조하기만 한 악명 높은 곳이다. 그래도 중간마다 보이는 해바라기가 있어 그리 팍팍한 길은 아니었다.
오늘도 어제 만났던 스페인 남자애는 나에게도 말을 걸어왔다. 매일 반복되다 보니 이젠 루틴이 되어가는 느낌이긴 하다. 여전히 느껴지는 아리송함으로 벨로라도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공립알베르게(순례자 숙소)에서 줄을 서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네덜란드 여자애와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와 너 모자 신기해 보인다"
"응! 난 까미노에서 만난 사람들을 추억하기 위해서 모자에다가 손글씨 받고 있어."
"와 멋있다! 나는 내 조개에 사람들 이름을 받고 있어! 네가 첫 한국인이야! 너의 이름을 써줄래? "
네덜란드 여자는 나의 모자에 한글귀를
나는 여자애의 조개에 내 이름을 새겨주었다.
"저건 웃음표시지? 한국어 아니지? "
당연하지! :)
서로가 서로에게 한글귀씩 선물해 준다는 건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 도착한 알베르게는 나름 수영장도 있고 꽤나 큰 곳이었다. 오랜만에 묵혔던 빨래도 한꺼번에 하고 이층에서 세탁물을 건조대에 말리고 있었는데 요 근래 매일 나에게 말 걸고 있는 스페인남자애가 여전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정말이지 뒤통수가 따갑다. 이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이젠 나도 정말 의심이 들정도다. 심지어 순례자들 사이에서도 우리가 같이 걷고 있는 게 나름 소문이 나는듯했고 나와 같이 걷는 한국인 멤버들만 장난친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스페인 사람 이탈리아사람 너나 할 것 없이 국제적으로 놀림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아직 이 친구의 마음이 정확히 뭔지는 잘 모르겠다.
알베르게에는 한 스페인 할아버지가 묵고 계셨는데 알고 보니 놀라운 스토리를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할아버지는 60살이 되신 이후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정말 매년! 걷고 계신 분이었다. 나름 알베르게에선 유명인사셨고 너무 호탕하신 분이라 그분의 말 한마디에도 사람들이 항상 에워싸고 있는 기분이었다. 할아버지는 벽면에 붙어있던 본인의 작년 사진을 바로 보여주셨고 매년 이곳에서 사진을 찍어 붙여놓으신다고 하신다.
나도 우리의 그룹들과 다 같이 사진을 찍어 벽면에 붙여놓았다.
언젠가 다시 와도 그 자리에 사진이 붙어있기를..
그렇지 않더라도 내 마음 한 구석에 그 사진이 영원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