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에서 발견한 문장과 시선
이제 우리에게 '자존감'은 익숙한 단어입니다. '자존감'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고 마음을 달래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 영향을 주지만 언젠가부터 개인이 겪는 문제의 원인을 모두 '자존감이 낮아서'라는 말로 해석하는 경향이 생긴 것 같은데요.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하는 것도 내 자존감 문제인 것 같고, 취업 면접에서 떨어지는 것도 내가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 것 같고 말이죠.
심리학자이자 뇌과학자인 허지원 교수는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에서 '높은 자존감'이라는 말은 유니콘 같은 허상이며 당신은 잘하고 있으니 스스로를 좀 더 자랑스러워해도 된다고 말합니다.
1.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제임스는 1980년 대 심리학에 자존감 개념을 처음 끌어들이면서 설명하면 이렇게 정의합니다.
자존감 = 성취 수준 / 야망
성취와 야망이 높으면 가장 좋겠지만, 적절한 야망이면 자존감이 낮아질 일은 없습니다.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려면 '성공의 수준을 높이거나,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게' 현명한 접근 방법인 거죠.
그런데 1970년대 이후, 사회 보다 자기 자신에 집중하는 것을 더 강조하는 트렌드가 되면서 개인 자존감에 더 많은 의미 부여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어느새부터 심리적 원인으로 자존감을 설명하며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여 성취와 실패를 자존감 문제로 치환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저자는 절대적으로 높거나 절대적으로 낮은 자존감이란 존재하지 않고 높은 자존감이란 착한 지도교수, 부모의 손이 필요 없는 아이, 유니콘 같은 허상이라고 말합니다.
2. 상태 자존감 state self-esteem는 삶의 맥락과 고비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본인이 '스스로 자각하는' 자기가치감 입니다. 우리 모두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하는 유동적인 자존감을 끌어안고 살고 있다는 뜻이죠.
물론 자기가치감이 낮을수록 정신건강 문제의 위험성이 높아지는 경향성은 분명합니다. 자신의 성취를 얕잡아보고 하대하고 남에게 들이밀지 않는 모진 잣대로 자기평가 self-rating 하기 때문이죠. 판타지 소설이나 다름없는 자기계발서 수준에서 내려다보면, 어차피 우리는 지금 다들 엇비슷한 자존감과 쉐도복싱하고 있습니다.
어떤 날을 높아졌다가 어떤 날은 낮아지기도 하는 자존감을, 아무런 가치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보아줬으면 좋겠습니다.
3. 자존감이 높아진 사람의 뇌를 들여다보면, 보상적인 쾌락 경험과 관련한 뇌 영역이 자기개념 self-concept을 담당하는 뇌 영역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칭찬을 들어 즐거움을 경험하면, 뇌의 쾌락 영역 및 자기 자신에 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뇌 영역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거죠. 칭찬은 굉장히 쾌락적인 보상으로 자존감의 토대가 됩니다
반대로 자존감 낮으면 이 연결성 저하되는데요. 칭찬과 자기개념을 별개의 것으로 처리하고 긍정적 피드백보다 부정적 피드백에 더 집중하는 뇌 활성화 패턴을 보이게 되는 거죠. 뇌는 내부와 외부에서 오는 신호의 간극/오류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그럴수록 인지부조화 해결 위해 스스로 가치를 습관적으로 과소평가, 타인의 의도를 곡해하는 악순환의 길로… 그러니 스스로를 좀 더 자랑스럽게 여겨도 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어릴 적 당신의 뇌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작동했습니다. 어른들의 칭찬을 편안히 받아들이며 기분 좋아했습니다. 간헐적이지만 꾸준히 반복되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그동안 부정적인 반응에만 작동했던 우리 뇌의 배선은 천천히 바뀝니다.
이번에는 정말 잘했을 수도 있습니다.
뇌를 그렇게까지 힘들게 하지 말아요.
4.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화로는 ‘아무것도' 풀리지 않는다
화는 표출할수록 더욱 커져감. 자존감을 낮추는 사람(가족 등)과 가능하다면 물리적/심리적으로 분리
재양육 reparenting 제공해줄 수 있는 편안한 사람을 만나 성숙한 내면 구축 기회 갖는 것이 중요함
둘째, 자존감이 ‘높은 척' 하기
자기 삶에 집중하는 ‘척’ 하기, 모든 일을 SNS에 드러내지 않기
중립적 이야기에 과잉반응 하고 정색하는 패턴을 억제하고, (마음 불편하더라도) 아무렇지 않은 ‘척’ 하기
혼자 밥을 먹거나 홀로 있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척’ 하기
실패나 성공의 가능성이라든지 주위의 평판에 초연한 ‘척’ 하기
셋째, 페르소나, 가면은 다양할수록 좋음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 압력에 적절히 반응하기 위해 ‘천 개의 가면'을 가지고 살아가며, 다양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사용해 사회적 관계를 맺어감
우리의 가면은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된 가식도, 타인의 비위를 맞추려는 위선도 아님. 그저 지혜롭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삶의 기능이자 기술일 뿐
그렇게 우리는 매일 조금씩 더 괜찮은 사람이 될 거예요.
5. 나태주 시인은 유퀴즈에 나와 "요즘 사람들은 자존심은 높은데 자존감이 많이 손상된 것 같다. 밖으로 나타낼 때는 자기가 그럴듯하고 멋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는 완전히 찌그러진 깡통이 되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집에 와서도 자기를 찌그러뜨리지 말자는 것. ‘괜찮다’고 스스로 말해주고 때때로 자기한테 휴가와 상을 주고 칭찬하면 자존감이 올라가지 않을까"라고 말했습니다.
작년 한 해 우리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을 겁니다. 그리고 원한만큼의 결과를 못 얻을 수 있죠. 기대한 만큼 성취 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을 실패로 취부하고 개인의 자질의 문제로 해석하면 우리는 힘들 수밖에 없어요. 충분히 잘해왔다고 마음을 다독이며 2023년 다시 한발 한발 걸어가길 바라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