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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Sep 19. 2021

그 버스 안, 동생의 마음



몇 년 전에 지인의 남편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떠났으니 그것도 복이라면 그리 믿어도 되겠지만... 생활이 어려운 상황에서 도박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는 지경이었다. 암이라는 진단을 받아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도 도박을 했다는 이야기는 충격이다. 아내에게 손 벌리고 돈 없다면 구타하는 일이 빈번하게 있었다고. 일하다가도 도박장으로 달려가게 만든 불치병이 돌아가신 분을 더 아프게 유혹했었나 보다. 여기저기 병원을 전전하다 끝내 호스피스 병원에서 숨을 거두어 장례식을 치렀다.


여동생과 함께 문상을 갔는데 처음에는 싸락눈이 마른 나뭇가지에 싸락싸락 음악처럼 내리더니 돌아오는 오후에는 함박눈으로 변했고 금방 발목까지 쌓여 슬슬 걱정이 되었다. 장례식장이 용인이어서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온통 하얀 눈밭으로 변했다. 버스는 엉금엉금 출렁출렁 금방이라도 뒤집어질 것 같아 승객들은 불안에 떨었으며 버스가 한번 꿀렁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어머, 어머" 하며 울먹이는 소리도 들리니 더 불안하다. 

 

가다가 덜컹덜컹 멈추기는 수도 없었고 길이 꽉 막혀 꼼짝도 못 하다가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처럼 비틀거렸다. 버스 안에서 즐기던 눈 오는 풍경은 낭만이 아니라 몸을 잔뜩 긴장시키는 무서운 흉기였다. 이렇게 버스가 기울 때마다 동생은 나를 보호하려는 몸짓을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었다. 그해 겨울엔 왜 그리도 눈이 많이 왔는지. 그 후로 서울에서 그렇게 많은 눈은 보지 못했다.


나중에 동생이 말해서 알았는데, 그날 동생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나 보다.

“언니, 만약에 버스가 눈길에 미끄러져 구른다면 내 몸으로 언니를 감싸 안으려고 했어.”

이 말을 들을 때 내가 너무 작아지는 걸 느끼고 부끄러웠다. 나는 맘속으로 ‘어이쿠 얘는 그게 말이 돼? 날 왜 부끄럽게 하는 거야? 언니가 동생을 보호해야지, 그 생각은 내가 했어야지.’ 

 

그때 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빨리 서울에 안전하게 도착하기를 바라는 맘뿐이었다. 라디오 소리까지 들렸다 안 들렸다 하며 혼자 떠들고 있었는데 다들 귀도 정상이 아니었는지. '라디오 좀 꺼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생명의 위협까지 느낄 정도였기에 찌직거리는 라디오 소리는 승객들 귀에 들리지 않았을 거다. 기사 아저씨는 온몸에 힘을 주며 얼마나 가슴 졸였을지 많이 늦었어도 다시 한번 감사하고 싶다. 사람이 살면서 이처럼 가슴 졸여야 하는 일이 빈번하다면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 일로 느낀 것이 있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동생의 깊은 마음도 몰랐을 거고 생명의 소중함도 가사님의 대한 감사도 몰랐을 거다. 고통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는 말이 참 맞는 말인 것 같다.

오후 3시경 장례식장을 떠났는데 서울에 도착하니 깜깜한 밤. 엉금엉금 기어서라도 무사해서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 온몸이 피로에 절어 녹초가 되었어도 서울에 들어왔다는 방송을 들으니 의자에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인간의 마음은 간사하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좀 전까지만 해도 오만 생각 속에 허우적거리면서 '괜찮을 거야.' '무사할 거야.' '죽는 거 아니야.' 했던 마음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우리는 문상 갔다가 엄청난 곤혹을 치렀다.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문상길이었다.


삶의 순간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깨닫는 유익을 내 것으로 담아서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지혜를 갖고 싶어졌다. 이제 그 일도 추억의 한 장으로 넘길 수 있게 되었지만 함께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들의 불안한 수다에 동의는 해도 너무 심한 불안감은 자신이나 주위 사람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낀다. 누가 누구를 평가할 수 없지만, 무슨 일을 당할 때는 모든 순간이 별일이었는데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체험을 했기 때문인가? 


동생은 언제나 생각이 깊다는 걸 느끼고 있었지만 나보다 늘 한 수 위라는 걸 떨칠 수가 없다. 매사에 눈치도 빨라서 먼저 행동하는 스타일. 혹 언니 동생이 바뀐 건 아닌지 가끔은 마음에 들지 않는 말과 행동으로 속상할 때도 있지만 그건 동생도 마찬가지겠지. 이 험한 세상에 믿을 사람이 누가 있나, 형제자매라도 남보다 더 못한 사이도 많다. 우리 남매들은 부모님이 남기고 간 재산이 없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래도 물보다 진한 피를 나눈 사이는 좋아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의 관심 대상이 된다. 때로는 비판도 하고 내키지 않는 웃음도 웃어야 한다. 세 명이나 되는 동생들은 각자 자신들의 자리에서 성공을 위해 달려왔을 테지. 이제 모두들 잠시 숨 고르기를 했으면 좋겠다. 가끔씩 하늘을 올려다 보기도 하고, 인색하게 굴었던 자신에게 조금씩 상을 주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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