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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Oct 07. 2021

세상에서 제일 만만한 사람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앉았을까?”

“누가, 어디?”

“우리가 방금 지나쳐온 사람들.”

”글쎄.”

“나란히 앉아서 차를 마시면 좋잖아.”

“차야? 물 마시는 거 아닐까?” 

“차든 물이든”

“......”


“둘이 싸웠나?”

“그랬나 보다, 허허허.”

“그래. 죽이고 싶도록 미울 때도 있지”

“......”


“당신도 내가 미울 때가 많았지?”

“아니? 없었어.”

“왜 없었어. 당신 눈 보면 다 아는데.”

“한 번도 없었어.”

“그 거짓말 정말이야?”

“응.”

“난 있는데.”

“하하하, 당신은 수시로 내가 밉잖아.”

“호호호. 킥킥킥.”


이렇게 둘이 한바탕 웃고 한참을 말없이 걸었다. 이 대화를 하고 나서, 무슨 생각을 하느라 묵묵히 땅만 보고 걷기만 했을까 우린. 

내가 그렇게나 표나게 남편을 미워했었나 보다. 속을 들켜 버린 것 같아 미안했다.


하늘이 부부로 맺어준 것은 연약함과 부족함을 서로 채워주라는 뜻일 거다. 거기에 힘입어 본인들이 결혼하기로 결심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들을 보고 반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시도 안 보면 미칠 것 같고 뜯어 말리면 더 달라붙어서 누구도 갈라놓지 못한다고. 둘 사이에 사랑만 존재 하는 것처럼 행동하다가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로 투닥투닥. 서로의 단점이니 장점이니 시시콜콜한 일까지 들추어내지고 목소리는 더 커져 마음엔 무거운 앙금이 내려앉는다. 대체로 남자들이 여자보다 몸무게도 많이 나간다. 가슴도 넓고 힘도 세고. 그런 까닭에 여자는 연약한 그릇이라 했나보다. 가슴이 넓은 남자가 마음까지 넓은 건 아니지만. 


하늘이 파랗고 맑은 날 저렇게 따뜻한 차를 준비하고 공원 나들이를 하기까지 얼마나 좋은 마음이었을까. 저분들을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차를 마시도록 기분 상하게 한 대화는 무엇이었을까? 부부가 서로 불만이 있다는 것은 하나 되지 못했다는 건데 둘 중에 그릇이 큰 사람이 먼저 손잡아 주어야 한다. 사랑하는 마음도 미워하는 마음도 하늘의 뜻이 없으면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부부의 인연은 참 요상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나도 가족들에게 지적받을 일이 많다는 거 안다. 남편의 행동 중에 내 맘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 아주 많아 그것을 고쳐 보려고 지적하고 다투기도 한다. 그러나 예상은 언제나 빗나가고 나는 계속 지적하고 싸우려는 몸짓을 하고 산다.


“당신은 나한테만 강해.” 

웃으면서 하는 남편의 말에 내 마음이 부끄러워진다. 딸들에게나 동생들에게는 하지 못하는, 아니 하기 싫은 지적을 1초의 갈등도 없이 쏟아내는 말. 부부는 그렇게도 만만한 사이인가? 가깝고도 먼 사이가 이런 건가 보다. 알고 보면 서로 ‘짠’한 사이인데.


어느 날 남편이 내가 어지른 주변 정리를 깨끗이 하기에 당신은 결혼 초에는 깔끔한 남자였노라 칭찬을 했더니 그날부터 더 깨끗이 정리했다. 그랬다. 지적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걸 확인하면서 남편을 인정하는 것이 가정의 평화를 위한 지혜로운 방식임을 새삼 깨달았다. 매일 술 마시고 싶어 하는 남편이어서 일주일에 두 번 마시는 날을 정해 주었다. 못 마시게 목숨 걸듯 뜯어말려야 더 맛있다고 느끼는 게 인간의 심리일지는 모르지만 술 마시는 거 미워만 할 것이 아니라 정해진 날만큼은 슬쩍 안주도 마련해 주면서 노력한 결과 주량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언젠가 “여보 나 이제 술 안 마실게.”라는 고백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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