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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Oct 21. 2021

김치피자와 시어머니

   

“얘, 네가 만든 피자는 소화도 잘되고 부드러워서 좋다.”

“그래요? 많이 드세요.”

“이런 피자는 너만 만들 수 있지?”


‘너만’이라는 단어에는 상대방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뜻이 들어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김치와 다진 소고기 그리고 계란을 주원료로 만든 피자를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해 먹었다. 할 때마다 시어머님이 좋아하시면서 잘 드시던 기억이 있는데 돌아가신 후에는 한 번도 안 했다. 


며칠 전 시어머니를 생각하다가 김치피자를 만들었더니 남편이 맛있다며 좋아한다. 그 사람은 어떤 요리든 고기가 들어가면 무조건 맛있다고 하니 진심인지 의심이 들 때도 많지만, 자기 엄마가 생전에 즐겨 드시던 음식이라고 알려줬더니 호기심을 갖는다. 


친구들 시어머니들은 집안일 도울 일이 생기면 안 아프던 다리, 허리가 아프다면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댄다지만 우리 어머님은 “시애미 빨리 죽으라고 일 못하게 하느냐”며 일을 찾아서 하시는 분이셨다. 이웃 사람들에게 며느리에 대해 안 좋게 평가하셨다는 말이 들린 건 내가 어머니 맘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었겠지. 그러나 내 앞에선 싫은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난 그런 시어머니께 원망보다 ‘누구든 마음에 안들 면 그럴 수 있지’라고 그냥 그러려니 했다. 왜냐면 이 가문에 들어오시기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아픔은 눈물이 얼굴 범벅이 될 만큼 상처였음을 알았고, 그렇게 들려주시던 말씀이 언제나 내 맘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일하는 며느리를 대신해 집안일도 많이 도와주셨고 덕분에 난 직장을 마음 놓고 다녔다. 퇴근하고 시장에 들러 반찬거리들을 사들고 올 때면 캄캄한 길목에 서 계시는 어머님. 그것이 관심이고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싫었다. 왜 싫은지 이유도 모른 채 그냥 싫었다.


“뭐 하러 여기까지 나와 기다리세요?”

“집안이 덥기도 하고. 너 기다렸지.”

“캄캄한데 다치시면 어쩌려고요.”

퉁명스럽게 한마디 하고 앞서가면 뒤따라 오시던 어머니.


항상 긴장해야 하는 직장 일에 매달리다 보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갈된 상태에서 퇴근하는 발걸음은 언제나 무거웠다.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 나오신 시어머니도 반갑지 않을 정도로. ‘못된 것’ 나는 후회하는 일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풋고추가 안 맵고 맛있네.”

“그러게요, 괜찮은데요.”

“너나 되니 이렇게 맛있는 고추를 사지 아무나 못 산다.”


말씀을 하셔도 상대방이 들어서 기분 좋도록 해주시니 얼마나 지혜로우신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도 어머니처럼 남들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친구분들 모임에서도 우리 며느리가 타는 커피가 젤 맛있다고 다른 사람이 주는 커피를 안 마신다는 흉 아닌 흉을 보며 한바탕 웃곤 했단다. 


시어머니의 관심이 이유 없이 싫었던 내가, 아니 이유는 분명 있을 텐데 마음속에서 꺼내기 싫어서였을까 이제는 젊은이들의 마음에 선뜻 다가가도 되려나? 망설여지게 되고 딸들에게도 말을 걸러서 하게 된다. 나이가 드니 젊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어른이 되지 않으려고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며 반면교사로 삼는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갈등은 어느 집이나 크고 작게 일어나는 일. 요즘은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 보는 시대라지만. 결혼하고 몇 년 동안은 시장에서 싸구려 옷을 하나 사도 장롱 속에 몇 달 처박아 두었다가 오래전부터 있었던 옷인양 꺼내 입었고, 양말을 사고도 이웃집에 며칠 두었다가 신기도 했었다. 사람은 자기의 나약함을 누군가에게 보이기 싫을 때 스스로 작아지는 걸 느끼나 보다. 상대를 탓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나 가정을 위해서 좋지 않을까 싶은데. 참 돌아보니 왜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살라고 눈치를 준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한동안은 시어머니 시동생들 그리고 우리 식구 넷. 아홉 사람의 살림을 책임지고 살다 보니 어느 것 하나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가계부는 마이너스로 돌아갔다. 많은 식구가 오글오글 부대끼며 사니 자잘한 사건들이 수없이 괴롭혔지만 그래도 때때로 우리 며느리가 만든 것이 최고라고 말씀해 주시는 시어머니 덕분에 견딜힘이 생겼고 사랑받고 살았다 말하고 싶다.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세상은 살 만하다는 말이 실감이 되는 나날이었으니까. 그래서인지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와 못 해 드린 것만 자꾸 생각이 나니 어쩜 좋을까.


내가 만든 김치피자를 제일 좋아하시던 어머니. 언제나 소식하시더니, 밀가루 반죽이 아니어서 소화도 잘된다며 두 쪽이나 드실 때마다 만든 사람의 입장에선 너무 신나는 일이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제가 만든 김치피자 맛있게 잘 드셔서요.”


예쁜 손자 손녀가 오면 김치피자 만들어 맛을 보여줘야지. 

아직은 어려서 김치가 매울 수도 있을까? 물로 한번 씻어서 만들면 어떨까.

우리 강아지들 언제 오려나. 

평소에 먹던 피자 맛이 아니라서 덜 좋아할지 몰라도, 

“할머니 이 피자 맛있어요.” 하는 말을 들으면 예전처럼 또 신이 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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