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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Oct 21. 2021

이게 바로 기적

 

“으으으 추워~ 아파요!”

새벽 1시에 입원하고 응급 수술을 받은 나는 얼음장 같은 수술실 수술대에서 막 깨어났다. 전신 마취로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지만 너무 추웠고 너무 아파서 엉엉 울었다.


“울면 안 돼요.”

울면 안 된다는 간호사의 음성이 들렸지만 나는 울었다. 눈물이 그냥 흘렀다. 생살을 찢고 골절된 손목뼈에 핀을 박았는데 그 아픔이 어떻게 참아지겠는가.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한 순간의 부주의로 고통은 심했다. 


핸드폰 울리는 소리에 물 묻은 발로 종종걸음 걷다가 거실에서 미끄러졌다. 손목은 부어오르고 작은 상처에서 솟구친 피는 여기저기 흩어져 거실 마루 바닥에 붙고, 다리에도 붙고, 팔에도 붙었다. 엉덩방아로 꼬리뼈 통증에 덜컥 겁먹었지만 겨우 일어나 한발 한발 걸어보니 걸어진다. 부어오르는 팔을 붙잡고 얼마나 감사를 했는지 모른다. 사고가 나려면 참 우습게도 나는 것 같다. 잘 놓인 징검다리도 한 번 더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옛말의 지혜를 되새기면서 그런 말은 생각으로만 했지 행동하지 않고 살았던 미련함이 있었나 보다.


그렇게 하룻밤 사이에 일상이 변해버린 기막힌 일이 벌어진 거다. 밤에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 엑스레이 촬영을 해보니 고관절은 괜찮았다. 아~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이 모든 사고가 우연은 아닌 것 같아서 내 몸에게 미안했다. 다리에 버티는 힘이 있었다면 넘어지지 않았을 거다. 유산소 운동을 거의 매일 하고 있건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모양이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함께 사시던 시어머님이 고관절 수술과 대퇴골 수술을 받고 통증을 호소하셨는데 그 아픔을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도대체 미끄러지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눕는 것 일어나는 것도 힘들고, 집안일은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된 것 같다. 늘 마음먹은 대로 건강할 줄만 알았던 몸이 부주의로 무너졌지만 걸어 다닐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일은 터졌고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리면 뼈는 붙겠지만 한심한 자신을 보게 된다.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걸 깊이 깨달았다.


요즘 거울을 볼 때마다 얼굴이 찌그러져 보인다. 왜일까? 통증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얼굴이 굳어져 버렸나 보다. 대책 한 가지가 떠올라 운동할 때마다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바로 마스크 속에서 스마일~의 입 모양을 만들며 걷는 거. 나의 새로운 아이디어에 만족하며 환하게 밝아질 내 얼굴을 기대하면서. 다행히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어 민망한 입 모양을 해도 모르니까 좋다. 


하루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기적인 것을. 두발로 걷는 거.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 거. 음식을 먹는 거.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것들이 다치고 보니 무료하다고 투덜대던 일상이 기적이었음을 알아간다. 


근데 그 기적은 왜 나이가 들어가면서 알아질까? 3개월 시한부라고 선고받은 암 환자는 어느 날 암 덩어리가 사라진 것을 기적이라 말하지만, 나는 하루를 무사히 보낸 감사의 고백이 진정한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음과 몸이 건강하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나는 그동안 입으로만 감사하며 살았나 보다.


이번 사고로 절실히 느낀 것은 부모가 자식들을 위하는 길은 아프지 않고 지내는 거였다. 시간과 돈뿐 아니라 마음의 흔들림은 또 얼마나 큰 부담인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맘이 가득이다. 가끔 자신이 마신 커피잔 정도만 처리하던 남편의 일상은 또 어떤가. 식사한 설거지까지 마치고 출근하느라 느긋하게 즐기던 아침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분주한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세상은 무언가를 발명하고 큰 성과를 내야만 위대하다는 단어를 쓰기 좋아할지 모르지만 팔 아픈 아내를 위해

“내가 할게, 내가.” “당신이 어떻게 한다고 그래”라며 팔 걷어붙이고 여기저기 꼼꼼하게 둘러보고 깨끗이 치우고 다니는 남자. 그런 남자가 위대해 보이다니...

“허허, 부엌일이 끝도 없네. 돌아서면 일이고 또 일이니.”     


핸드폰은 편리한 물건이지만 때로는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거, 그 물건 때문에 길거리에서 그렇게 많은 사고가 난다고. 물론 사람들의 부주의가 더 크지만 말이다. 이제는 느긋하게 생각하고 행동하자. 핸드폰이 울려도 종종걸음 말자. 전화받기 불편한 상황일 때는 받지 말자. 중요한 일이라면 필요한 쪽에서 다시 연락할 테지 뭐. 

     

근데 골절된 팔이 웬만큼 견딜 만하니까 다짐했던 것들은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전화벨 소리에 다시 마음이 바빠진다. 정말 못 말리겠다. 진정해라. 진정해 이 할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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