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과녁을 빗나가다'
지금도 들리는 듯합니다. 아직 날이 어둑할 무렵에 아버지께서 마당에서 일을 하시며 부르시던 찬송가 소리. 덕분에 전날 아무리 늦은 시각에 잠들었더라도 새벽 이른 때에 잠을 깰 수 밖에 없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썩 좋지는 않았어요.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있는 성격이라 주일학교 아이들과 어울리기도 어려웠고 교회학교 선생님들이 편했던 것도 아니었거든요. 아버지의 강요로 마지못해 예배 출석을 하기는 했지만 그곳에서 마음을 내려놓지는 못했어요.
그런 시간이 지속되다 중학교 2학년이 되었고 공부에 집중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교회 가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고등학교 입시를 치루어야 했고 장학금을 받고 학업을 이어가야 한다는 이유를 강하게 주장했죠. 돌이켜보면 제 인생의 화살이 '과녁을 빗나가' 알 수 없는 방향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신앙 문제로 아버지와 깊은 갈등이 시작되었어요. 집안 분위기에 평안함이 없었고 책을 보는 저도 늘 몸 어딘가가 긴장되어 있었구요. 당시의 저에게는 성경을 아는 것보다 세상 지식을 구하는 것이 중요했고 자아가 강했던 것이었죠. 대학을 입학할 시기까지 예배와는 멀어진 생활이었어요.
대학은 미션스쿨을 갔으니 채플수업을 참석해야 했기에 2년 동안 예배를 드린 셈이었네요. 참석만 했지 영혼은 그 자리에 있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세상 기준에서 보면 열심히 살았습니다. 성실했으며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모든 일을 제 힘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 태도로 살아서인지 크게 나쁘다는 평을 듣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애를 썼는데도 제 삶에 평화는 찾아들지 않았어요. 무슨 까닭인지 기쁨도 없었구요.
무언가 크게 잘못 되었다는 판단이 들었던 것은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2012년 무렵이었어요. 아버지의 사고사가 제게 불러온 충격은 상당히 컸어요. 부모라는 존재는 늘 그 자리에 변함없이 계실줄 착각했던거죠. 못다한 사랑에 회한이 깊었지만 만시지탄일 뿐이었죠. 바닥을 헤아릴 수 없고 실체조차 알 수 없는 수렁과도 같은 감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그림도 그려보고 시를 써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방황의 터널에서 저는 지칠대로 지쳐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으니까요.
화살이 날아간 애초의 각도가 잘못되었음을 자각하기까지 길고 지난한 시간이었음을 이제 생각하게 됩니다. 무엇에 가치를 두며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하는 고민을 어두운 골짜기 같은 시간들을 통과하며 하게 되었습니다.
살아보니 오기만 하고 가지는 않는 기억들이 있더군요. 아버지와 이별한 일이, 당신과 끝내 화해하지 못했던 일이, 제게는 그러했습니다. 전조가 어떤 방식으로 있었다 하더라도 이별이라는 사건은 늘 돌연히 일어나고 좋은 이별이란 없었구요. 조금씩.. 조금씩.. 슬픔이란 감정에 익숙해져 갈 뿐이었어요.
당신께서 떠나시고 삶이 멈춘 듯 느껴지던 시기에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렀습니다. 이제 아버지께서는 그토록 그리워하셨던 천국에 가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육친과 이별하고 난 후 긴 몸부림같은 시간 끝에 저의 '아버지'께로 가는 길 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너무 늦은 때는 없다는 말에 공감을 합니다. 신앙의 길을 찾는데도 그러하다고 여겨집니다. 하나님은 제 마음이 가장 간절해질 때를 기다려 저를 부르셨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 글은 육신의 아버지를 여읜 후 긴 방황 끝에 저의 참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가는 저의 여정을 담은 고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