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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모솔새 Jul 05. 2021

과일만 안 먹으면 좋겠지만

편식에는 끝이 없고

그렇다, 과일만 안 먹는 거라면 다행이지만 나는 불행히도 과일 말고 다른 갖가지 음식도 가린다. 


한때 우리 집 내부에서 토마토가 과일이냐 채소냐의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식물학적으로 따졌을 때, 토마토는 식물의 열매니까 과일이 맞다. 하지만 실용적인 구분 기준에 따르면 토마토는 목본성 식물이 아니라 초본성 식물, 즉 풀에 해당하니까 채소로 나뉜다. 이런 논쟁이 벌어진 건 내가 토마토 먹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는 '토마토는 과일도 아닌데 왜 안 먹느냐'는 입장이셨고 나는 물론 '토마토 과일설'을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양측 모두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다. 나는 과일만 안 먹는 게 아니라 채소도 편식할 수 있다!


토마토를 싫어하는 내 입맛은 다행히 세상에서 존중받는 편이다. 나는 토마토에도 알레르기 따위는 없지만, 세상에는 토마토 알레르기를 가지고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많으니까 거기에 묻어가는 셈이다. 과일을 안 먹는다고 하면 "왜요?"란 질문이 백이면 백 돌아오지만, 토마토를 안 먹는다고 하면 물어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 오이도 비슷하다.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으니까. 다만 나는 오이 향보다는 씨가 들어있는 안쪽의 물컹한 식감을 싫어하는 거라 채 썰어서 물회나 냉면에 조금 들어간 정도는 먹으니 아예 안 먹는 거라곤 할 수 없다. 아, 토마토 파스타에 들어가는 익힌 토마토도 괜찮다. 덩어리 말고 소스 형태일 때.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든다는 점은 마찬가지인데도, 매운 걸 못 먹는다고 하면 사람들은 쉽게 납득한다. 예를 들면 익히지 않은 파, 마늘, 양파 같은 것들. 가열하면 괜찮은데 고깃집에 가면 익히지 않은 채로 나오니까 문제가 된다. 고깃집에서 곁들이로 파절이가 나오면 매워서 손을 댈 수가 없다. 양파절임은 그래도 상황이 낫다. 접시를 받자마자 뒤적거려 양념이 잘 배도록 하면, 나중에는 아린 맛이 적당히 가셔서 먹을 만하다. 혹시 고깃집에서 양파절임을 괜스레 뒤적거리는 사람을 본다면 그런 이유겠거니 생각해 주시길 바란다.


과일을 안 먹는 데에서 그쳤다면 좋았겠지만 나는 과일 가공품도 잘 먹질 않는다. 딸기맛 우유에 딸기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지만 나는 딸기가 싫다. 그럴 땐 '진짜 과일처럼 몸에 좋은 것도 아닌데 굳이 왜 딸기맛 우유를 먹겠냐'는 기적의 논리가 등장한다. 그러면 과일의 식감을 느낄 수 없는 과일주스는 괜찮아야 하겠지만, 가끔 과육이 들어있는 주스를 몇 번 마셔보고 낭패를 당한 이후로 나는 늘 조심한다. 깨알 같은 글씨로 과육이 들어있다는 내용이 적힌 걸 보면, 마치 지뢰 폭발을 막아낸 기분이다. 그런 주제에 레모네이드는 좋아하니 주변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것도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뭐, 굳이 따지자면 레몬은 원래 과육을 먹는 과일이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나열하고 보면 대체 뭘 먹고사나 싶지만, 세상은 넓고 음식은 많아서 뜻밖에 먹고살 만하다(심지어 아직 안 먹는 음식의 반도 언급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남들이 가리는 것들 중 내가 잘 먹는 것도 있으니 세상이 나름대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나는 멍게, 생굴부터 양고기, 말고기(그것도 날고기로)도 잘 먹는다. 사람들에겐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 가리는 음식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골라 먹을 권리도 있다. 이 매거진은 신념에 관한 이야기도, 체질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이것은 취향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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