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1945년생이셨다.
어릴 적 사고로 장애가 있으셨지만,
부유한 교육자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나,
가정적이셨던 아버지와 사랑 많으셨던 어머니의
돌봄 속에서 사회적 시선 따위는
그녀에게 정서적 장애를 안길 수 없게끔 성장하셨다.
당시 대학을 나오셨고,
동네 사람들이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면,
어머니와 상의할 정도로 지혜롭고 지식도 해박하셨으며,
리더십도 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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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들려주시던 동화와 우화 그리고 성경 이야기.
명화의 줄거리와 당시 유명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
큰 성량이나 좋은 노래 솜씨는 아니셨지만,
허밍과 가성으로 때때마다 부르시던 가곡, 팝송 그리고 찬송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셨고,
자신이 구상한 소설 습작과 시를 쓰셨던,
그리고 지금은 천상병 시인만 내 기억 속에 있으나,
산책할 때 읊으시던 여러 편의 시들.
매일밤 동네 교회당에서 드렸던 사랑하는 아들을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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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던 시대,
실존의 부름 앞에 당장 한 끼의 식사를 고민해야 했던 그 시대에
생에 대한 인문학적 소양과 문학적 감수성이 충만한 존재로
어머니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녀의 시대를 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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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2학년 생일선물로 받은 16 bit 컴퓨터.
국민학교 3학년 생일선물로 받은 전축.
국민학교 4학년 선물로 받은,
당시 희귀했던 CD로 제작된 `카라얀` 전집과 휴대용 미니 CD 플레이어.
그리고,
경기도 학부형 웅변대회에서,
본인이 작성하신 원고로 대상을 받으셨던 기억.
해외여행이 일반적이지 않던 1994년,
중학생이던 나를 도전하여 보내셨던 동남아 3개국 여행.
대학교 2학년 또 한 번 나를 도전케 함으로,
군입대 전 60일간 홀로 떠났던 유럽배낭여행.
빠듯한 형편이었음에도 내 시대를 열기 위한
마음이고 사랑이었으며 쉽지만은 않은 투자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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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당신은,
당신의 부모로부터 경험했던,
시대를 열고 견인하는 도전을 계속해 오셨던 거다.
그렇게 내 시대를 여셨다.
그래서 난 내 시대 속에서,
매 계절의 변화에 감탄하고,
타인의 삶을 진심으로 경청하며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얻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무척 어린 나이에 다양한 고전들을 진지하게 대할 수 있었고,
오페라 음악과 오라토리오, 연주곡, 팝송과 가요, 트롯에 이르기까지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었으며,
그림과 영화 그리고 자연에 이르기까지 젖어들 수 있는 감성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40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동심을 잃지 않았다.
어머니가 주신 이 모든 것들이
얼마만큼 내 삶을 풍요롭게 하며,
또한 내 주변인들을 풍요롭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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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적으로 감사했던 부분들은 있었지만,
급작스레 오늘 내가 다다른 이 감사는 아니었다.
불현듯 스치는 이국의 가을바람이,
2006년 12월 작고하신 내 사랑하는 어머니의 업적을
순식간에 새기고는 지나가 버렸다.
# 당신이 여신 나의 시대는 당신의 예상보다 정서적으로 더욱 풍요로웠다 전하고 싶다
# 순식간이었으나 짙은 여운으로 남다
# 남은 여운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덜고 다시금 지나는 바람에 실려 보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