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전 아일랜드

독서 입문용 만능 소스

by east river

"선생님! 드디어 우리 지윤이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왔어요!! 처음 이에요~ 그런데요,, 책을 베고 누웠더니 딥 슬립(deep sleep) 했다며 좋아하더라구요~"


저런,, 독서학원 다닌지 한달만에 드디어 책을 '자발적'으로 빌려 왔는데,, 벌써 책의 숙면 기능을 알게 되었다니... 그래도 내가 이 동네 일타 '독서논술 선생님'인데, 이대로 숙면 기능만 사용하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 시간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가져오도록 했다. 우리 중등이 지윤이가 선택한 책은 바로 '와일드 로봇' 최근 영화로도 개봉 된 책이기에 다행이다 싶었다.


"어머님~ 주말에 지윤이와 함께 꼭 '와일드 로봇' 영화를 함께 보세요~ 정말 재미있어요!"

그렇게 말씀을 드리고 편의점 모바일 상품권을 보내드렸다. 팝콘과 콜라 사서 꼭 보시라고,,


역시나, 다음 수업 시간 지윤이는 반짝이는 눈으로 책을 읽으면서 영화에 나왔던 부분, 나오지 않은 부분, 각색된 부분들을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면서 책이 더 재미있다라나 뭐라나!

지윤이에겐 영화가 사우전 아일랜드였다.




도서관에만 가면 배가 아프고, 눈이 감긴다. 진짜다. 아랫배가 살살 아프고 가스가 차는 것 같다. 금방이라도 퐉! 터질 것 같다. 화장실을 다녀 왔는데 시원하지 않다. 자리에 앉아 책을 폈더니 이젠 눈이 문제다. 시큼거리고 퍽퍽하다. 너무 불편해서 휴대폰을 보니 그새 여러통의 카톡이 왔다. 카톡에 답을 하고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리니 이젠 눈이 가렵다. 그런 나를 엄마는 도끼 눈으로 쳐다 보고 계신다.


안그래도 책이 싫고, 독서는 더 싫은데, 도서관에 앉아 있으려니 고통 그 잡채다. 정말 대 환장 잡채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보니 '줄무늬가 생겼어요'라는 화려한 그림책이 보인다. 오! 표지가 딱 내 스타일이다.

비록 내 나이 12세지만, 그림책 읽으면 어떠랴. 그림이 너무나 예쁜걸!


자기 마음을 숨긴 주인공이 줄무늬로 바뀌는 모습이 꼭 '나'같다. 책이 너무나 싫은데, 엄마가 화 내실까봐 찍 소리도 못내고 따라 나온 내 모습,, 내가 책 주인공이라면 어떤 모습으로 변하려나?

오래 되어 너덜너덜 해 진 책 모습? 너무 읽기 싫어서 마구 구겨 버린 모습? 아마도 한 페이지도 안 읽어서 아주 깨끗한 네모 반듯한 모습일 것 같다.

나도 책 속의 주인공처럼 용기 내어 외치고 싶다.


"나 독서 안좋아해요!"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나니 왠지 속이 시원해졌다.

이런 책이라면 다음에 와서 또 읽을 수 있겠다. 다음엔 더 예쁜 책으로 골라 봐야지!


'나'에겐 예쁜 그림이 사우전 아일랜드 소스였다.




'좀머씨 이야기'

일단 짧다. 제목도 모? 머? 왠지 만만한 느낌이다. 옥케이! 콜!


일상적인 이야기. 어렵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는데,

어라? 이 주인공 갑자기 왠 '코딱지?' 윽! 얘 왜이래?

좀머씨에 대한 이야기라며? 그냥 책 속의 주인공의 어린시절 이야기 같은데?


아아,, 이래서 제목이 좀머씨 이야기구나,,


중간에 읽기를 포기하려 했는데, 주인공의 어린 시절과 나의 어린 시절이 오버랩 되기도 하고, 짧은 이야기 덕분에 완독 할 수 있었다. 완독 했기에 느낄 수 있는 아련함이었다. 어쨌든 한 권 다 읽었다.

한 권을 다 읽었더니 자신감이 생긴다. 좀 더 두꺼운 책으로 도전 해볼까?


짧은 책이라는 소스를 발랐더니 완독과 독서 자신감이 생겼다!




사실 우린 책을 싫어하는 게 아니다. 책 앞에서 '뇌가 멈추'는 거다.

책을 펼치면 책 속으로 들어가는게 아니라 스르르 폰으로 들어 간다.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우리 뇌를 깨워야 한다. 눈으로 들어오는 활자를 보며 과거의 기억과 경험, 지식들을 꺼내어 새로운 정보와 연결하는 일종의 네트워크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깐 힘들다는 얘기다. 그래서 독서를 하려는 나의 행동을 뇌에서는 '위험'으로 간주한다.


뇌가 이 '위험'신호를 느끼지 못하게 하기 위해 소스를 발라야 한다.

그래서 독서에 입문하기 위해 아주 만만한 '사우전 아일랜드'를 살살 발라주면 좀 더 수월하게 도서를 시작 할 수 있다.

그러니깐 '사우전 아일랜드'는 독서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발라 주는 소스다.


'와일드 로봇'을 읽기 전 영화를 보기.

'줄무니가 생겼어요'처럼 예쁜 그림.

'좀머씨 이야기'처럼 짧은 책.

이 밖에도 소리내어 읽기, 리뷰 먼저 보기, 익숙한 작가의 책 선택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일단 발라 보셔라! 한 번 잡숴봐야 알 수 있다.

어쩌면 다 아는 방법일수도 있다. 하지만 아는 것해 보는 것은 정말 다르다.

그러니 오늘 독서를 해 보겠다고 생각했다면 꼭! 한 번 발라 보시길 간곡히 청한다.

그러면 먹기 싫은 채소 야채도 먹을 수 있는것 처럼 조금 무서웠던 책도 읽을 수 있게 된다.


자자,, 한 번 잡솨봐요!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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