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미 깊은 상상력
언제부턴가 피자를 시키면 작은 소스가 따라왔다. 내가 추가 한 적도 없는 '갈릭 디핑' 소스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따라 왔다. 처음엔 궁금해서 한 번 손가락으로 콕 찍어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느끼하고 이상한 마늘향이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늘 버리기 일쑤였다.
'시키지도 않은 이게 왜 자꾸 오는 거야. 귀찮고 아깝게시리,,'
그러던 어느날 시험기간에 고생하는 아이들과 함께 피자를 먹고 있었는데, 아 글쎄 피자 꼬다리를 찍어 먹는게 아닌가? 오호~ 토핑이 있는 피자에는 어울리지 않더니 피자 꼬다리랑 이렇게 잘 맞을줄이야!
"선생님, 그런데요 '셀리 존스의 전설' 책 이야기는 실제 이야기에요?"
『셀리 존스의 전설』을 읽고 나서 준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픽션을 좋아 하는 나로써는 갸웃 거리는 준우를 보며 갸웃 거렸다.
사실 준우는 설정 자체가 상상이라는 것을 납득하기 어려워했다. 과학 백과사전이나 논픽션 위주로 독서를 해왔기에 픽션의 ‘상상’이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 친구들은 책을 ‘정보 획득 도구’로 여긴터라 정보나 사실이 병확하지 않으면 불편해한다. 서사(흐름), 비유, 환상적인 설정은 '비현실적'이라며 집중하지 못하는것도 이 친구들의 특징이다.
"이게 왜 중요한가요?"
"이건 실화예요?"
"왜 이 책을 읽어야 해요?"
픽션을 읽는 데 필요한 건 '상상력'이라는 '디핑 소스'다.
픽션은 상식과 논리로 바로 흡수되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고, 보이지 않는 감정을 상상하며 연결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과 뇌를 가진 아이들에게, 팩트 중심의 독서를 즐기는 아이들에게, 우린 어떤 갈릭 디핑 소스를 건넬 수 있을까?
먼저 '셀리 존스의 전설'부터 시작해보자.
이 책의 갈릭 디핑 포인트는 '이건 실화는 아니지만, 당시 유럽 식민주의 시대의 동물 착취와 전시 문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라는 이야기의 프레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만약 너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탈출했을까?' 상상 시나리오를 유도하여 고릴라의 시점을 '가상의 자서전'처럼 안내하면 몰입하기 쉬워 진다.
준우는 처음엔 어떻게 자기가 고릴라가 될 수 있냐며 강한 거부감을 보이다가 200년전 유럽 사람들의 생활 양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의 밀렵군과 그 시절 세계여행을 하는 과정으로 관심을 유도했더니 그럴수도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동물들이 겼은 진짜 고통이기도 하겠네요..." 그렇게 완독했다.
미국의 대문호 '허번 멜빌'의 '모비딕'책에 디핑 소스를 발라보자.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이 책은 고래잡이 배의 여정을 지도로 시각화 해 보면 훨씬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또한 등장인물 관계도와 '추격전 구조'를 도식화 해본다면 좀더 실감나게 읽을 수 있을리라.
뜨거운 여름날. 중학생인 민재에게 이 책을 추천했다. 시원한 바닷물에 흠뻑 적셔질꺼라 기대하면 건냈는데 왠걸?
"쌤. 이 책은요 그냥 '고래 잡다가다 다 죽고 나만 살았다' 끝. 이거네요?"
응? 그렇지,, 이 두꺼운 책을 그냥 한줄 요약 했구나. 상상의 여정은 어디 갔을꼬?
몇주 뒤 백지 노트와 함께 이 책을 다시 건냈다. 고래잡이 배의 항로와 인물 관계도를 도식화해서 그리면서 찬찬히 다시 읽게 했다. 고래잡이에 필요한 장비들도 그려보게 했다.
(잠깐. 민재는 중학생이다. 절대 안하려고 하는 걸 어르고 달랬다. 이 과정은 생략하는 걸로)
"오! 이건 게임 맵 같은데요?"
"고래잡이에 필요한 장비들을 그려보니 게임 아이템 같아요!"
그렇지! 이게 바로 피자 꼬다리에 디핑 소스를 바르는 효과다.
이대로 끝내면 뭔가 아쉽다. 그래서
“왜 인간은 잡을 수 없는 것을 집착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바로 갈릭 디핑 소스가 되는 것!
마지막으로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이 책은 로빈슨이 무인도에서 생존하면서 주변을 살피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 했다. 그 이야기를 따라서 그림을 그리면 정확히 그 섬의 지도가 그려진다. 또한 주인공이 생존을 위해 했던 일들을 체크 리스트로 정리할 수 있다. 주인공의 행동을 따라해 보는것도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한다.
우리 중학생 유진이는 TJ 성향이다. 계획형 인간. 스터디 플래너도 나보다 더 잘쓰는 모범생이다.
유진이에게 이 책을 건네며
"이건 고립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시뮬레이션처럼 읽어 봐봐"
먼저 함께 생존 키트를 만들고, 책을 통해 로빈슨의 행동을 체크리스트로 분석하게 했다.
"너라면 무인도에서 무엇을 먼저 할래? 자 이제부터 너의 계획과 비교하며 읽어 봐"
비록 이 책의 주제중 하나인 '근대 유럽 사회의 가치관'의 이해는 얼여웠지만 인간 본질의 모습을 생존 체크리스트와 함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완독!
픽션을 즐겁게 만드는 갈릭 디핑 소스는 바로 배경중심, 타임라인, 지도, 인물 관계도 그리기다.
상상력이란 건 꼭 타고난 사람만 누릴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버려지기 쉬운 피자 꼬다리처럼 처음엔 퍽퍽하고 아무 맛도 없는 것 같지만, 어쩌면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열쇠일지도 모른다.
오늘 누군가에게 "이야기 속 세계로 들어가는 상상력"이라는 디핑 소스를 건네보자.
버려지기엔 너무 맛있는 피자 꼬다리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