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마법 같은 그림책
"그림책이요? 그건 아이들만 보는 거 아니에요?"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세요? 그림책에 대해 어떤 추억들이 있나요?
사실 그림책은 모든 세대를 위한 달콤한 마법이다.
가끔은 글 보다 그림이 먼저 마음에 닿을 때가 있다. 이번 '초코 소스'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맛이기에 유아부터 어른까지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꼭 필요한 그림책 다섯 권에 나의 경험을 녹여 소개하려고 한다.
달콤한 초코 소스처럼 부드럽게 마음을 감싸기도, 쓴맛으로 정신을 번쩍 들게 할 책들이다.
"커다란 커어다란~" 하고 말하는 순간,
아이의 눈이 점점 커지고 입은 쩍 벌어 진다. 윤이가 3살 때였다. 사과 하나가 '쿵!'하고 떨어졌을 뿐인데, 동물들이 하나 둘 모이고 결국 다 먹은 사과 뼈대에 모여 비를 피하는 내용의 -『사과가 쿵』 다다 히로시 -
반복되는 의성어와 의태어가 아이들 귀에 새콤달콤하게 녹아든다.
실컷 반복해서 책을 뒤적이더니 아이는 식탁에 있는 사과 옆으로 동물 인형들을 졸졸이 줄 세워두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던지,,
지금은 중학생이라 그 귀여움은 휴대폰 속 영상에만 남아있지만, 사과를 보면 가끔 그때의 그 아이가 떠올라 혼자 픽~ 웃게 된다.
그 시절 우리에게 『사과가 쿵』은 밀크초콜릿을 발라 놓은 것 처럼 달콤한 책이었다.
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아이의 하교 픽업을 깜빡했다. 나를 기다릴 아이가 눈에 밟혀 미친듯이 달려갔다. 부랴부랴 운동장에 도착하니 아이가 혼자 미끄럼틀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달려가 안아주니, 아이는
"괜찮아~ 구름 보면서 상상놀이 하고 있었어~"라며 놀란 나를 위로 했다.
그날 이후 -『조금만 기다려 봐』 케빈 행크스 - 이 책을 보면 미끄럼틀에 누워 있던 그날이 떠오른다.
창틀에 놓여져 있던 인형들이 각각의 소중한 무언가를 조용히 기다리는 이야기. 친구를 기다리고, 맛있는 걸 기다리는 등 무언가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내가 기다리는 건 뭘까?', '그게 이루어지면 얼마나 기쁠까?'를 마음껏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부드럽고 따뜻한 기다림에 초코 소스를 한 방울 더해주길. 나처럼 쌉싸름한 기억이 아닌, 두근두근 기대되는 기다림이 되길...
이상한 모양의 책을 추천 받았다. 책이 탭 모양이다.
휴대폰 압수 당해 어쩔줄 몰라하는 아이들에게 건네기 딱 좋은 외형이다.
내용도 짧고 단순하다. "beep"같은 단어가 반복 돼 소리내어 읽기 좋다. 하지만 영어다.
바로 -『Tek: The Modern Cave Boy』 패트릭 맥도넬 -
윤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 처음 개인 스마트폰을 손에 쥐어줬다. 모든 사건은 여기서 시작이었다.
독서를 제법 하던 아이는 점점 책과 멀어지고, 숙제도 미뤄지고, 결국 학원 선생님께 전화까지 오게 되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속에서 불이 나던 그 때 이 책을 추천 받았다. 때마침 아이 휴대폰이 망가졌다. 이 참에 아예 휴대폰을 없애 버리고 이 책을 건냈다. 아이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힘차게 두들기고, 꾹꾹 누르고, 휴대폰 하듯이 톡톡 대더니 결국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영어긴 하지만 초등 5학년이 무난히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쉬운 수준의 단어만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탭 모양처럼 생긴 이 책에다가 휴대폰이 없어진 분노를 실컷 풀어낸 후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tek'은 그 아이에게 초코 소스가 되어주었다. 휴대폰은 없지만, 그래도 쓴 맛을 책으로 이겨냈다고나 할 수 있을까?
어느 날 조용히 그 분이 찾아 왔다. 바로 '사춘기'
정체불명의 손님은 무서운 호랑이처럼,, 이유도 없고, 예고도 없이 불쑥, 난대없이, 갑자기 말이다.
내가 운영하는 독서학원에도 해맑던 아이가 하루 아침에 앞머리 커튼을 치고 들어온다. 아,, 여기도 찾아 오셨구나.. 그래서 그분들께 물어봤다. 왜 커튼을 치냐고.. 해서는 안될 질문이었지만,, 나도 너무 궁금했다.
다행이 한 친구가 설명해 주었다. 답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날 그 친구에게 이 책을 조용히 건네 주었다. -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 주디스 커 -
네 맘속에 불쑥 찾아 온 호랑이를 강제로 쫓아 내려 하지 말고, 손님처럼 맞이해 보자고.
실컷 먹이고, 실컷 머무르게 하면 언젠가 반드시 떠날 거라고.
처음엔 '뭔 소리야?' 하던 아이가 책을 여러번 천천히 읽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에 당황하던 아이들이 호랑이에게 간식을 주듯 천천히 적응해 가는 모습. 그 모습이 참 안쓰럽고 기특했다. 아이들도 성장하느라 무지 애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이 사춘기의 거칠고 험난한 시간을 잠시 달래줄 초코 시럽이 되어주길 바라본다.
어? 이게 아닌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 지금. 뭐하고 있지?!!!!!
사회 초년생 시절. 처음으로 내가 번 돈을 내 마음대로 쓸 때의 짜릿함과 만족감에 심취해 있었다.
술자리, 야식, 새벽까지의 소비. 그 사이 몸도 마음도 망가져가고 있었다. 숙취감에 해어나오지 못한 어느 주말 아침. 거울 속 초췌한 얼굴을 보며 '이건 아니지!'싶었다. 그날 자주 갔었던 도서관에 멍 하니 앉아 있었는데,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 바삭바삭 갈매기』 전민걸 -
사람 사는 마을 안까지 들어온 갈매기. 바삭한 간식을 먹고 싶어서였다. 너무 맛있어서, 너무 익숙해져서, 먼 바다에서 나는 걸 잊었다. 마치 내 모습 같았다. 원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었던 그 시절. 이 책은 나에게 따끔한 훈계와 큰 위로였다. 그 후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지금 바삭바삭에 중독된 듯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책을 꼭 건네고 싶다.
모든 첨가물을 뺀 순도 100%에 가까운 다크초콜릿 처럼. 아니 카카오닙스처럼 인생의 쓴맛을 얼른 맛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 가기를 기다려본다.
그림책은 짧지만, 절대 가볍지 않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타이밍이 있다. 이번 주엔, 초코 소스처럼 마음을 감싸주는 그림책 한 권 어떨까?
*혹시 지금 내게 필요한 그림책을 추천 받고 싶으신 분 계실까요? 댓글 남겨주시면 정성껏 추천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