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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무관심과 답장텀

250427 일요일 일기

by 피연

다른 무언가에 몰입하다 보면 온 연락 정도야 천천히 답장할 수 있는 거다. 연락에 신경을 안 쓰려면 내가 다른 일에 자주 집중할 수 있을 정도로 삶을 성실히 살아내야 하고, 남들 또한 그런 삶을 사는 중임을 생각해야 한다.


이 말이 내가 지금 연락에 신경 쓰고 있다는 건 아니다. 친구한테서 연락이 늦으면 혹시 내가 한 말이 기분 나빴을까 봐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건 전보다 정말 많이 나아졌다.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끙끙 앓다가 답장이 오면 나도 신나서 보냈었다. 그럼 또 답장은 천천히 오고. 나는 그 사이에 답장이 언제 오나 생각하는 이 비생산적인 일들.


그렇다고 나도 종일 카톡 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너무 답장이 빠르면 좀 귀찮을 때도 있다. 그런데도 한참을 그렇게 살았고, 연락과 상대방의 마음을 분리해서 생각하기가 힘들었다.


친구든 누구든 호감 가는 사람과의 연락은 항상 신경 쓰이게 마련이었지만, 어느 날이었다. 언제나처럼 연락에 신경을 쓰다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봤다. 내 걱정처럼 내가 싫거나 귀찮다면 그걸 굳이 연락 텀으로 표현할까? 상대방 성격에 절대 안 그럴 것 같았다. 그저 내 멋대로 믿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이런 스트레스가 있어서인지 웬만한 답장은 최대한 빨리 보내는 편이다. 상대방이 기다릴까 봐 미안한 마음이 항상 있어서. 너무 한참 답이 안 오면 답답하거나 걱정될 수 있으니까. 사실 기본적으로 알림이 뜨면 계속 신경 쓰여서 얼른 보내버리는 것도 있다. 아무튼 굳이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겠다는 마음이 든다.


상대방의 답장이 느려져서 신경 쓰이던 상황이 최근에도 있긴 있었는데, 일부러 별 생각 안 하고 할 일을 했다. 그리고 나도 무언가 집중해서 하다 보니 1시간은 훌쩍 가 있기도 하더라. 그 쯤 답장하니 남들과 텀이 비슷해진 것도 같다. 이렇게 보냈는데 칼답이 오면 또 그건 그거대로 신경 쓰이긴 하겠더라.


답장을 늦게 할 자유, 편할 때 할 자유가 있는 거다.


어쩐지. 왜 나랑만 연락하면 다들 답장이 늦나, 나만 그런가 걱정했던 적도 있는데, 애초에 내 주위 사람들이 다 칼답으로 실시간 연락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내가 30분 이내로 답장을 하면 그냥 편할 때 보냈던 건가 보다.


이게 별 거 아닌 일 같아도 연락할 일이 많은 요즘 시대에는 꽤 중요한 마음가짐 같다. 뭐든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는 게 제일 중요하지. 내가 답장을 언제 보내도 남을 사람은 남고 떠날 사람은 떠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나와 같지 않으며, 연락에 집착하는 것만큼 피곤한 일이 없다.


다시 전 연애로 돌아가서 또 그 답장텀을 마주한다면 지금은 나름대로 잘 적응해서 오히려 편할 수도 있다. 물론 나를 그만큼밖에 안 좋아하는 사람은 사귀지도 않겠지만. (연인 사이에서는 단순 연락과 답장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을 얼마나 배려하고 아껴주느냐로 번지기도 한다.) 어찌 됐건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쓰던 걸 이제 버렸으니 잘 된 일이다. 삶에는 카톡 말고도 중요한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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