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잠시 다시 스친 것처럼
몇 년만에 만난 그 남자애는, 더는 남자애라고 부르기 어려운 때였지만.
어쨌든 내게는 지금까지도 그 남자애다.
낯선 듯, 익숙했다.
만난 기간보다 몇 배로 긴 공백을 사이에 두고, 변한 점보다 여전한 점이 먼저 보였다.
오래 전의 습관인데도 그 남자애를 나름 배려하려 했던 내 버릇 역시 익숙한 것처럼 튀어나왔다.
그 남자애도 그 점을 신기해했다.
여전히 그걸 기억하고 있었냐고 묻는 얼굴에 웃음기가 있어서 보기 좋았더랬다.
속도 없이.
하지만 잠깐 다시 스친다고 해도, 그게 진정한 재회가 될 수는 없는 법.
양쪽 모두에게 진짜로 재회할 의사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사람을 정말 진심으로 좋아하고 싶었고, 글쎄, 그 남자애가 아니니 뭔 생각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끊어졌던 걸 다시 이어붙일 마음은 둘 다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저, 미화된 추억에 의한 향수 정도였겠지.
내게는 그래야만 했고, 그 남자애에게는 그랬을 거라고.
만나서 술 한 잔, 어떻게 보면 참 짧았는데.
그때 내 선택이 지금까지도 후회가 된다.
더 여지 없이 대했어야 했는데.
반짝이는 것을 지나치지 못하는 까마귀마냥, 나는 또 한 번 그 반짝임에 홀려버렸다.
그때는 그걸 인정할 수 없어서 술을 탓했지만, 지금은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서.
다시 마주친 날 이후, 며칠은 연락이 오갔고, 그러다 다시 끊겼다.
또 다시 몇 년이 흐를 때까지 그 남자애와 다시 보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 그 남자애를 다시 만난 겨울 이후 또 다른 터닝 포인트에 닿았다.
내 생애 만난 모든 남자들 중 가장 좋은 사람을 만났으니까.
행운이자 성장통으로.
누군가에게 기댄다는 것을 알게 해준 좋은 사람을 만나 좋았는데.
그 좋은 사람의 눈에는,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감정 역시 보여버려서.
그 사람을 만나고서야 그 남자애가 내 첫사랑이었다고, 알게 됐다.
하필이면, 그때.
그 좋은 남자를 눈 앞에 두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