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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아리 May 11. 2023

쓰레기는 티가 나는 법

#정반대의 남자


첫사랑 이후 나는 두 명의 남자를 더 만나고서야 내 인생에 가장 좋은 사람이었던 남자를 만났다. 

그 사이 두 명의 남자 중 한 사람과는 무척 짧게 만났기 때문에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그냥저냥 꽁냥대던 기억 정도일까? 


문제는 그 다음 만난 사람.


무의식적으로 첫사랑과는 정반대의 남자를 만난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내 취향과 백만년쯤 떨어진 남자를 만났을 리 없고, 위험 신호를 전부 무시했을 리도 없으니까.


내게는 꽤 아픈 기억이다. 마치 자학이라도 한 것 같은 기억.

어쩌면 나는 차라리 아프길 바라며 그 시간을 그냥 견뎠던 걸까?


한 가지 확실한 건, 다시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리란 점이다.

그러기엔 아주 오래, 많이 아팠으니까. 





그는 연상이었다.

나는 연상과는 잘 만나지 않는데, 대부분 기억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놈이 그중에서도 정점을 찍어줘서 이제는 연상이라면 치를 떨게 됐다. 

모든 연상의 남자가 나쁜 건 아니란 걸 알고 있으면서도, PTSD처럼 꺼리게 되어버렸으니까.

일단 연상인 점부터 첫사랑과는 반대.

첫사랑은 하얀 편이었고, 그 놈은 피부가 까맣게 타있었다.

그 외에도 인상, 성격 그리고 목소리마저 첫사랑과는 정반대 지점에 위치한 그 놈을 만나기로 결심한 건, 23살 여름이었다.





그 놈은 대학교 대신 일을 선택한 사람이었고, 누나들이 많았다.


그래도 만나는 사이인데 인사만 드리러 가자고 해서 갔더니 그 이후로는 매번 불려다니기 일쑤였다.

이미 시집 온 며느리를 대하는 것처럼. 결혼을 기정사실화해서 말하는 것도, 일이 있을 때마다 혹은 그냥 놀러갈 때조차 불러대는 것도.


그저 성향의 차이려니 했다.


매번 가면 힘들고, 지치는 자리였지만. 이상하게 어쩌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평소 그런 걸 참는 성격이 아닌데도.


아마 무기력했던 것 같다.


크게 의미를 느끼지 못한 채 영혼 없이 끌려다니던 시기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결혼 생각이 없다.

그때도, 지금도.

그런데 그 놈과 그 가족은 빨리 결혼시키려고 애를 썼다.

이유가 대체 뭘까,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굳이 대학을 나온 사람과 안 나온 사람을 가르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자면, '대학 나오고, 집안 좋고, 이런 여잘 네가 언제 또 만나겠어. 잡아다 앉혀야지.'  정도.


그 말을 듣는 순간, 내내 잔잔했던 정신이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정신이 들었달까? 그쪽에서 아무리 애달복달해도 우리 가족이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결혼이지만, 거기까지 내 의견이라곤 없이 들이밀어지는 것조차 수치스러울 것 같았으니까. 내 선에서 매듭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알리니 그 놈은 본색을 드러냈다. 친구들에게 유독 폭력적인 성향을 많이 보이던 놈인데, 과연 그 성향이 나를 향하리라고 내가 정말 생각하지 못했을까?


바로 도망가지 않은 내 탓이다.


내가 너무 오만했던 탓이다.


눈치 빠른 척, 똑똑한 척 다 하더니.


꼴이 참 우스워졌다고, 그 와중에도 생각했다. 


자기가 보고 자란 그대로 나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그 놈을 보며 헛웃음이 났고, 오히려 차분해지는 기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머릿속을 스치던 한 문장.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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