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와 부고 사이에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나는 많이 아팠었다.
몸이 많이 아파서 입원해있었고,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리에 서둘러서 퇴원 절차를 밟았다.
성인이 되어 장례식장은 많이 가봤지만, 손주로 치르는 건 참 많이 달랐다.
항생제를 시간 맞춰 먹어주지 않으면 열이 미친듯이 오르던 몸.
그렇게 시집살이를 당해놓고도 자기가 제일 많이 울어서 딸내미를 걱정시키던 엄마.
염을 할 때 조용히 눈물을 보이시던 아버지.
그 모든 게 마치 내게 소리치는 것 같았다.
어릴 때 친할아버지 댁에서 오래 지냈던 나와 내 동생은 유달리 조부모에 대해 정이 깊은 편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엄마를 잃었어.
오래 아프셨지만, 그래서 모두가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어디 준비가 되는 일이던가.
새벽에 몰래 울고, 화장실에서 몰래 울면서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장례식이 끝났다.
발인 날에는 눈이 많이 내렸고, 내겐 겨울을 싫어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다.
그리고 1년 뒤 겨울, 그 남자애와 마주앉게 됐다.
어쩌다 굳이 마주앉았는지.
사실 그때의 선택이 후회가 되기도 하지만, 그 남자애도 나도 누군가를 잃은 뒤라서.
그리고 내가 아팠을 때 열이 내려가지 않아서 정신이 깜빡거릴 때 가장 생각났던 것도 그 남자애였기 때문에.
막을 새도 없이, 장례식 때 네 생각이 났어.
그렇게 말해버렸다.
그 남자애 역시 그랬다는 말에,
"연락하지 그랬어. 부고잖아. 그런 건 해도 되는 거잖아."
정작 나도 하지 못했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 남자애를 다시 본 순간, 왠지 울고 싶었던 마음이.
대화를 나누며 들떴던 기분이.
내 안에서 오래 숨죽인 채 나올 곳만 찾고 있었던 감정임을.
나는 눈 앞에 두고서도 모른 채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헤어졌다.
그래도 그때는 뭔가 이상하다고, 낌새를 느꼈던 것 같은데.
적어도 가장 아플 때 생각났던 유일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아챘을 법한데.
왜 나는 유독, 그런 감정에 느리고, 인정하지 않으려 할까?
아마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이래서 전 남친을 마주치면 도망가야 하는 건가봐.
그 남자애 외에는 전 남친을 마주쳐도 아무 생각 없었던 주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