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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프롤로그, 가봐야만 아는 길

by 귀로미

"수어를 왜 배우시나요?"


이 질문은 늘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나는 특수교사여서 수어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어를 배우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같은 질문을 던졌다. “왜 수어를 배우세요?”

대답은 다양했다. 수어로 공연을 하고 싶다, 농학생들과 수어로 더 잘 소통하고 싶다, 수어가 필요한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등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딱히 이유가 없었다. 단지 흥미로워서 시작한 일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자주 물어봤는지도 모른다. 타인을 통해서라도 내 진짜 이유를 찾고 싶었다.


수어는 좁고 낯선 길이다. 내가 수어를 배운다고 했을 때, 누군가 "좁은 길로 가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며 그 길을 응원했다. 하지만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은 "노력 대비 얻는 게 없다"라며 험한 길로 가지 말라고 말렸다. 그렇게 말한 사람들 중 이 길을 걸어본 사람이 있는가? 아니,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가봐야 아는 일이었다. 그들 말대로 아무것도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 영혼이 즐겁다면, 그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일주일에 4일, 2시간씩 수어를 배웠다. 어느 달은 매주 서울까지 오가며 수어를 배웠다. 농인의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청각장애학교는 학생을 유치하지 못해 다른 장애유형과 함께 통합해서 운영하는 일도 많았다. 심지어 청각장애학생이 한 명도 없는, 이름만 청각장애인 학교도 있었다. 농인의 인구는 계속 줄고 있는데 도대체 난 왜 이렇게 많은 시간과 체력을 써가며 수어를 배우고 있는지 고민에 빠졌다. 정말로 가봐야 아무것도 없는 게 맞았던 걸까. 그러던 어느 날, 지인과 통화 중 고민을 털어놨다.


"제가 왜 이걸 배우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재미있어서 외엔 이유가 없어요.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데 왜 배우고 있는 걸까요?"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아무 목적 없이 한다는 게 정말 멋있는 것 같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무엇을 찾아 헤매고 있었던 걸까. 나는 좋아하는 일에서도 무언가 '성과'를 찾고 있었다. 세상이 흔히 말하는 성공의 기준, '돈', '직업', '명예' 같은 것을 말이다. 내가 하는 많은 일 중 하나쯤은, 그게 돈이 되지 않더라도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부터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1년 넘게 수어를 배우고 있다. 여전히 나만의 why를 찾아 헤매고 있는데, 이건 처음 why를 찾을 때와는 다른 마음이다. 지금은 '지속하기 위한 힘'을 갖고 싶어서 나만의 이유를 찾고 있다. 하지만 이제 안다. why는 기다린다고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계속 가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수어의 세계에 들어온 건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 호기심은 좋아하는 마음이 되었고, 그 마음이 점점 커져 이제 많은 사람들이 수어를 만나길 바라게 되었다. 내가 찾은 또 하나의 why는 수어가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언어라는 것이다. 그 사람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고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어를 배우면서 알게 된 아름다운 지점이 참으로 많다. 그 아름다움과 깨달음을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이 과정에 들어온 이상, 발을 뺄 수 없을 거예요."

음성언어 강사님의 말을 듣고 '아, 발을 뺄 수 없는 정도로 이 세계에 깊이 들어왔구나' 싶었다. 이 글을 읽고 있다는 것은, 당신도 이미 이 세계에 한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 수어에 발을 들인 당신의 '왜'가 궁금하다. 그 이유가 당신의 영혼을 행복하게 해 주기를. 무엇이 되었든 그 마음으로 수어에 대한 배움이 즐겁게 지속되기를 바란다.


"수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제가 만난 수어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한 명이라도 수어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이 글이 잘 쓰였다 싶습니다. 부디 수어가 더 많은 사람들의 손끝에 오르내리길 바랍니다.


25. 2. 3. 한국수어의 날에

귀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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