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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그저 마음이 끌려서, 내 앞에 주어졌으니 한다고 대답할 수밖에

by 귀로미

특수교육에 회의감이 들 때, '좋아서 하는 어린이책 연구회'를 만났다. '좋아서 하는 어린이책 연구회'는 대한민국 대표 어린이책 연구회다. 운이 좋게도 연구회에 들어가자마자 운영진 선생님들과 함께 공저를 쓰게 됐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폭발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은 <그림책 수업 대백과 261>에서 '장애이해 및 통합교육' 파트를 맡아 글을 썼다. 지적장애, 자폐성장애, 감각장애(시각, 청각), 지체장애 4 챕터로 나누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각 장애 유형을 쉽게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연구했다. 연구를 통해 다시 특수교육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감각장애가 사용하는 언어인 점자와 수어가 흥미로웠다. 뉴스 한 편의 동그라미, 지하철, 엘리베이터 등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언어지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언어, 나는 이 언어가 궁금해졌다.


사실 돌아보니 수어를 배운 게 처음이 아니었다. 대학교에서 '청각장애이해' 수업을 통해 수어를 배운 적이 있다. 장애 유형이 너무 많아 각 영역을 맛보기식으로 얕게 배웠지만 그때도 수어가 참 흥미로운 언어라고 생각했다. 또한 교사 초임 때 받은 수어 연수 이수증을 보고 수어에 계속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엔 수어를 깊이 배워야만 했던 운명 아닐까.


청각장애 파트를 쓰던 중 라사 잔쵸스카이테의 그림책 <수화로 시끌벅적 유쾌하게>를 만났다. <수화로 시끌벅적 유쾌하게 그림책>은 소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책에 나오는 아르놀다스는 "나는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무뚝뚝하다고, 실감 나게 이야기할 줄 모른다고 생각해 왔어요."라며 자동차와 소가 경주하는 이야기를 한다. 덧붙여 "하지만 수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왜 웃는지 모를 거예요."라고 말한다. 그렇다. 수어를 깊이 배워보지 못한 나는 그림을 봐도 이 장면을 이해하지 못해 웃을 수 없었다. 왜 웃는지, 나도 알고 싶었다.


농사회에서는 듣는 사람을 '청인'이라고 부른다. 청인들이 수어를 배울 때 어려워하는 지점이 있다. 그중에서도 비수지를 특히 어려워하는데, 비수지는 표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청인들도 비언어적 표현으로 표정을 쓰지만, 말의 강세, 높낮이, 빠르기 등을 통해서도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에 농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표정을 쓰진 않는다. 그래서 표정 쓰는 것이 무척 어려운데, 하필 수어는 비수지가 굉장히 중요한 언어다. 한국어의 음소처럼 비수지도 음소 중 하나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수어가 손으로만 표현하는 언어가 아니었다는 것, 비수지, 문법도 배워야 한다는 걸 알았다면 수어를 배웠을까? 생각건대, 아마... 다시 돌아간다 해도 배웠을 것이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고, 관심사는 생각보다 일관성 있으니까. 사실 이렇게 생각하면 이유를 찾을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누군가 수어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물어본다면 그저 마음이 끌려서라고 대답할 수밖에.


어떤 '왜'는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는 때로 이 답도 없는 이유를 찾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물론 그 과정을 통해 답이 없다는 깨달음, '그냥 좋아서'라는 이유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긴 하지만, 이유를 위해 너무 긴 시간을 쓰게 되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유가 없는 왜라면 너무 찾지 말고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해보는 수밖에 없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마음이 가는 것, 이게 새로운 무언가를 접할 때 가장 강력한 동기 아닐까 싶다. 관심이 생겼다면 그냥 마음이 가는 곳으로 따라가 보자! 그냥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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