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 환경 속으로 들어가자
하개월 유튜브 게시글.
"수어 영상을 보고 자막으로 만들어 주실 분을 찾습니다."
수어를 배운 지 4개월 차, 하개월 유튜브에 영상 자막 지원 메일을 보냈다. 도대체 어디서 나온 용기였을까.
12-1월에 초급 과정을, 2-3월에는 중급 과정을 들었다. 4월부터 고급반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신청자가 많아 수강신청에 실패했다. 그러던 차에 하개월 유튜브에서 수어 영상 자막 지원자 게시글을 본 것이다. 왜일까, 이 게시물이 나를 위한 것만 같았다. 게시글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메일을 썼다.
안녕하세요. 하개월님! :)
저는 현재 특수교사로 일하고 있는 귀로미라고 합니다. 하개월님의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다양한 세상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작년 12월부터 서울수어전문교육원에서 수어를 배웠고 수어중급 수업까지 들었습니다. 수어에 관심이 많아 하개월님 영상을 구독하고 있었고, 덕분에 올려주신 게시글이 눈에 딱 들어왔어요 :) 수어 영상 자막을 만들기에는 아직 부족한 수준이라, 수어를 보고 통역하는 작업을 제가 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다만, 4월에 수어 문법과 음성통역 수업을 들을 예정이라 이 수업을 듣고 작업을 하게 되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수어에 능통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작업인지, 어느 정도 가이드와 팁이 있어 수어중급 수준의 저도 할 수 있는 작업인지 답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늘 응원합니다! :)
무슨 용기로 이런 메일을 쓴 걸까. 다시 생각해도 너무 아찔하다. 하개월님은 한 영상을 보내주시면서 자막을 달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 보라고 하셨다. 처음 보내주신 영상은 밥을 먹다, 먹었다, 아직 먹지 않았다 등 마우스제스처를 다루는 내용이었다. 몇 번 돌려봐야 했지만 그래도 할만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몇 분과 함께 자막 작업에 참여하게 됐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다른 영상들도 첫 영상과 비슷한 수준일 줄 았았다. 하지만 내가 맡은 농인 강사들이 쓰는 수어는 해석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야말로 알아들을 수 없는 원어민의 말이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일단 수어 사전을 찾았다. 시중에 나와있는 마땅한 수어 사전이 없어서 검색을 통해 참고할 만한 사전을 출력했다. 일단 어휘부터 익혀보기로 했다. 모르는 단어가 나왔을 때 사전을 찾아보거나 지인에게 물어보는 방식으로 자막을 달았다. 15분 정도 길이의 영상이었는데, 0.25 배속으로 몇 번이나 돌려봐야 해서 굉장히 많은 시간이 들었다. 어떻게든 완성은 했지만 번역이 엉망이어서 늘 부끄러웠다.
어휘는 기본이고, 문법적인 요소가 굉장히 중요한 언어여서 초보자에게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있다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끝까지 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수어 일타강사 4명의 영상 8개를 작업했다. 이 과정이 없었다면 단기간에 수어 실력이 늘 수 있었을까.
무언가 잘하고 싶은 게 있다면 잘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나를 데려가야 한다. 수어를 잘하고 싶다면 농인을 많이 만나야 한다. 하지만 농인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이상 농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유튜브도 괜찮다.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농인들을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어도 배울 수 있다. 수어를 배우는 중이고 더 잘하고 싶다면 꼭 농인과 수어가 있는 환경으로 자신을 데려가 보길 바란다. 처음엔 어려울 수 있지만 점점 그 환경에 적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수어와 농인, 농문화를 알고 싶다면
하개월
https://www.youtube.com/@hamonthly
유손생
https://www.youtube.com/@dbthstod
전 국민 수어 배우기 프로젝트
https://www.youtube.com/@수어전국민수어배우기/vide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