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꼭 맞는 이름을 만들 수 있다면?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가장 기본적인 표현이다."
국민 프로그램 유퀴즈에 권동호 수어통역사님이 나왔다. 거기서 '수어 이름'을 처음 알게 됐다. 농인은 시각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로 이름도 보이게 불러야 했다. 수어 이름은 그 사람의 생김새나 특징을 넣어 만들어야 하는데, 보통 농인이 지어준다고 한다. 수어통역사는 유퀴즈 진행자 유재석에게 입이 튀어나온 특징을 넣어 수어 이름을, 조세호는 밤톨 모양 머리를 뜻하는 수어 이름을 만들어줬다.
나도 나에게 꼭 맞는 수어 이름이 갖고 싶었다. 수어 수업 첫 날, 선생님은 수어 이름을 만들어 오라고 숙제를 내주셨다. 만들어 주실 줄 알았는데 20명 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건 무리였나보다. 수어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이름을 지어야 하니 조금 막막했다.
개명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지만 보통 한번 이름을 정하면 바꾸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정해야 한다. 수어 이름도 그랬다. 한번 정하면 나를 그렇게 기억하게 되니, 나에게 꼭 어울리고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이름을 만들어야 했다. '예쁘다', '멋지다' 수어를 넣은 이름은 굉장히 흔했다. 살면서 동명이인 한 명쯤은 만나봤을 것이다. 사랑, 수진, 지혜 등 한글 이름에도 흔한 이름이 있듯이 수어에도 흔한 이름이 있었다. 그래서 수어 이름을 지을 때 본인만의 특징을 넣거나 한글 이름을 형상화한 수어를 넣어야 다른 사람과 겹치는 경우가 적고, 세월이 지나서도 오래 사용할 수 있다.
작가 이름으로 '귀로미'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귀로미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귀엽다’이다. 나는 늘 작가명을 설명할 때 민망해 하며 귀엽다는 뜻도 맞다고 한다. 하지만 더 좋아하는 의미는 따로 있다. '귀로:미', 나에게 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어 이 이름을 참 좋아한다. 작가명과 연결되는 수어 이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귀여운 여자'라는 뜻이 담긴 수어 이름이다. 귀엽다는 수어는 귀여운 것을 봤을 때 짓는 표정과 함께 한 손으로 볼을 톡톡 두드려 표현한다. 귀엽다는 뜻의 수어에 성별을 나타내는 수어를 넣어 완성한 수어 이름이 퍽 마음에 들었다.(외국에선 '젠더프리'로 성별을 나타내는 수어를 넣지 않는 것이 대세라고 한다.)
종종 청인들이 수어를 잘 몰라서 이름을 마음대로 만들 때가 있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수어는 움직임(수동)에 따라 의미가 바뀔 수 있고, 내가 의도한 것도 달리 해석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 귀여운 여자라는 뜻을 가진 수어 이름을 만들고 농인에게 이름을 소개했더니, '아줌마'라는 뜻을 오해할 수 있다고 한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지만 다른 분도 같은 피드백을 해주셔서 이름을 바꿔야 하나 고민 중이다. 한 지인이 얼굴에 비해 귀가 크다며 수어 이름을 하나 추천해 주셨다. '귀'라는 점에서 작가 이름과 연결시킬 수 있을 것 같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난 귀가 크진 않다. 그말은 즉, 끌리지 않는다는 말.
뜻만 잘 전달된다면, 본인이 좋아하는 이름을 스스로 정하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수어 이름을 본인이 만들게 된다면, 농인분들께 수어로 다른 뜻은 없는지 꼭 확인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