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는 사람을 존중하는 언어
농인 선생님께 수어를 배우던 첫날을 잊을 수 없다. 너무나도 생경해서, 2시간 동안 선생님을 바라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수어에 관심이 생겨 수어 배우는 곳을 찾아 헤맸다. 수어 수업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정보도 부족했다. 수업을 며칠 동안 찾다 포기하려던 차에 한 선생님께 팁을 얻었다. 역시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여기저기 이야기 해야 한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대로 각 지역별 수어교육원을 찾아봤다. 하지만 수강신청을 2~6개월에 한 번 했고, 대부분 이미 수강신청이 끝나서 몇 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하고 싶은데 못하게 되면 더 하고 싶은 법, 끈질기게 방법을 찾은 덕에 당장 배울 수 있는 곳을 알게 됐다. 거기가 바로 농인 선생님께 수어를 처음 배우게 된 곳, '서울수어전문교육원'이다. 온라인으로도 수업을 들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한 달에 한 번씩 수강신청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역시 배우려는 의지만 있다면 어떻게든 방법은 나온다.
수어를 본격적으로 배우게 된 것은 23년 12월이다. 서울수어전문교육원에서 초급 A 과정을 신청했다. 서울에 있는 교육원이다 보니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졌다. 다행인 건 서울 이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서울 거주자 신청 후 그다음 주 월요일부터 수강신청을 할 수 있었다. 다행히 몇 자리가 남아 수강 신청에 성공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수업 스케줄을 보고 조금 놀랐다. 서울수어전문교육원은 다른 지역에 비해 수업이 상당히 빡빡했다. 일주일에 4일, 하루에 2시간씩 수업을 들어야 했다. 한 달 내내, 그것도 주에 4일 2시간씩 무언가를 배워본 적 있는가? 임용 이후 이렇게 공부한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이왕 배우기로 한 거 열심히 해보기로 하고 수업을 기다렸다.
12월 4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첫 수업에 들어갔다. 나의 첫 수어 선생님은 P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농인이셨다. 첫 수업 주제는 '표정', 수어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배우는 시간이었다. 인사 후 간단한 수어로 안부를 묻고 바로 수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수업 내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런 경험은 난생처음이었다. 수많은 강의를 들었지만 이렇게 집중했던 적이 있었던가. 말소리 없이 수어로만 수업하시니 2시간 내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보통 같았으면 핸드폰도 한 번씩 보고 딴짓을 했을 텐데 그럴 수가 없었다. 수업이 끝난 후, 그 여운이 오래가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러다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청인들은 대화할 때도 상대를 잘 보지 않고 말한다. 눈은 핸드폰에 두고 "응, 듣고 있어. 말해"라며 상대를 자주 소홀하게 대했다. 아니, 나는 그랬다. 상대가 가까이에 있어도 눈 맞추며 대화한 게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무심했다. 하지만 수어로 대화할 땐 달랐다. 수어는 보지 않으면 소통할 수 없는 언어였다. 꼭 보게 만드는 수어가, 사람을 존중하게 만드는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존중하게 만드는 언어라니, 나는 그렇게 첫날부터 수어에 빠져들었다. 이 아름다운 언어를 나만 알 수 없었다. 내가 알게 된 수어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마구 전하고 싶어졌다. 이 생각이 나를 자꾸만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수어를 배우면서 삶의 태도도 함께 배운다. 나는 어떻게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었는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당신은 대화할 때 어떤가.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대화하는가? 대화할 때마다 상대를 바라보면 좋겠지만, 여전히 늘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나를 발견할 때마다 아차 하며 손에 든 핸드폰을, 컴퓨터에 둔 눈을 상대에게 옮긴다. 그렇게 계속 나의 태도를 인식하고 상대의 눈을 바라보려 노력하다 보면, 조금 더 상대를 존중하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내가 귀하듯 다른 사람도 귀하게 대하는 사람이고 싶어, 오늘도 곁에 있는 사람을 한번 더 바라본다.
TIP. 수어가 배우고 싶다면?
1. 서울수어전문교육원: http://www.sdeafsign.or.kr/SEW1/main.asp
*1차 접수 서울 거주자: 매월 3번째 수요일 10시
*2차 접수 서울 이외 거주자: 1차 접수 종료 다음 주 월요일 10시
2. 각 지역 수어교육원 혹은 농아인협회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