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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Oct 09. 2021

시공의 제약을 허문 인터넷

초연결성 사회의 도래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속담은 사람들의 입과 귀를 통해 소문이 빠르고 쉽게 퍼져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옛날부터 자력으로 움직일 수도 없는 정보나 지식이 1000리(약 390km)를 금방 주파할 수 있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도 해남군의 땅끝에서 벌어진 일이 서울에도 머지않아 알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말을 조심하라는 경각심을 주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떠한가? 오늘날 인터넷이 연결만 되어 있으면 지구의 정반대편에도 몇 초 만에 정보와 지식이 전달된다. 한국의 대척점과 가장 가까운 국가인 우루과이는 서울에서 20000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네트워크 상에서 한국인과 우루과이인은 큰 불편함 없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이제 발 없는 말은 천 리가 아니라 5만 리를 갈 수 있으며,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도 몇 주가 아니라 몇 초로 바뀌었다.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일들이 인터넷을 통해 현실이 되었고,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지금도 더 많은 것들이 불가능에서 가능의 영역으로 편입되고 있다. 발이 닿는 곳이라면, 전선을 이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연결해주는 인터넷의 등장은, 말 그대로 신세계로 인간을 인도했다.





  사회에서 다뤄지는 지식과 정보의 양이 많아지고, 사람들이 그것을 서로 주고받아야 할 필요성도 커져가며 전달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우편 시스템이 등장했다. 그러나 여전히 시간적인 불편함은 해소되지 않은 상태였다. 모두에게는 필요한 것을 좀 더 빠르고 저렴하게 주고받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오랜 숙원은 컴퓨터와 통신망이 등장한 20세기에 들어 겨우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노동력으로 실행했던 일을 기계에 맡기는 과정이 반복되었고, 정보 통신 영역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냉전에 돌입한 20세기 중반, 미국 국방부는 군사적 위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전국 연구 기관의 힘이 필요했다. 그러나 당시의 통신 수준으로 서부의 UC 버클리와 동부의 MIT 연구원들이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 고심 끝에 곳곳에 깔아 둔 전선으로 컴퓨터들을 연결하고, 전기 신호를 이용해 상호 소통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식이 시도되었다. '아파넷(ARPANET)'이라 불린 이 시스템은 대륙을 관통하는 새로운 소통 수단으로 떠올랐다.


  효율과 비용 감축을 중시하는 자본주의가 이러한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새 통신 기법의 유효성이 검증되자, 혁신적인 기술과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원한 자본이 서로를 자극해 TCP/IP라는 새로운 통신규약을 만들어냈다. 이로써 신속하게 광역 소통을 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모두에게 개방되었다. 인터넷이 출현한 것이었다.


통신의 발달은 항상 정보와 지식의 접근성을 확장하고 개선하여,
사회의 전방위적인 혁신을 가속한다

  인터넷 역시 이러한 역사적 법칙을 거스르지 않았다. 인지혁명부터 산업혁명까지 네 번의 대전환을 거치며 성장을 거듭한 문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혁신의 폭발력을 더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 난제에 대해 20세기의 인간이 내놓은 대답은 통신의 고도화였다. 인터넷은 산업과 시장, 사회와 연구실을 하나로 이어줌으로써,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계 최대의 정보 저장고이자 교차로가 되었다.




  세상 모든 난제를 과학기술로 해결하려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자극제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대에 정보와 지식을 빠르고 정확하게 교류하는 것만큼 확실한 혁신법은 없다. 인터넷의 출현 이후 전문가들이 갖가지 미래 예측에 번번이 실패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혁신의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새로운 기술이 구현되거나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신제품이 출시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터전이 열리자, 그동안 쌓여만 갔던 사람들의 욕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소비자들은 편리함을 누리고 싶었고, 기업들은 물리적 세계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비용을 감축하고 싶었다. 시장 수요로 전환된 욕구는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한 기술과 사업을 탄생시켰다. 우리가 핸드폰과 컴퓨터를 통해 네트워크 상에서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오늘날 인터넷이 보여주는 풍요로움과 다채로움은,
물질세계만으로는 전부 충족될 수 없었던 욕망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네트워크를 통해 오가는 수많은 데이터는 인공지능을 학습시키고 사물 인터넷을 작동시키는 데에 사용된다. 인터넷 뱅킹들이 간편 송금 시스템을 운영하고, 앱 기능 사용량을 파악해 고객이 자주 쓰는 메뉴 위주로 앱을 재편하는 데에도 이용된다. 그리고 네트워크가 품고 있는 방대한 공간은, 사람들이 필요한 정보를 노력해서 외우거나 자칫 잃어버릴 수 있는 USB를 들고 다닐 필요를 없애줬다. 그뿐 아니라 인터넷에 논문을 다루는 사이트와 재밌는 영상이 올라오는 사이트가 공존하며, 네트워크를 저장고로 활용하는 클라우드 서비스도 있다.


  가히 폭발적인 욕구의 분출은 모두의 편의와 이익으로 직결되었다. 인터넷은 수요와 공급을 매칭하는 초대형 플랫폼으로 떠올랐고, 온라인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오프라인 시장의 지분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초연결 시대에 들어서면서, 사람이 일상에서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기계가 처음에 우체국과 집을 오가는 시간을 없앴다면, 이제는 차량에서 운전자라는 개념을 아예 지워버릴 자율주행을 시도하고 있다. 무엇이든 점점 우리를 편하게 하는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인터넷의 힘으로 가장 소중한 자원인 시간을 절약하고,
해야 할 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이상적인 하루에 가까워지고 있다

  초연결성 사회가 인간에게 선물한 가치 중 이것보다 소중한 것이 있을까. 사람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더욱 집중함으로써 과거를 넘어서는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데이터를 연결고리로 이어진 인터넷과 인공지능은 앞으로 더 많은 사물에 부착되어 사람들의 일을 분담할 것이며, 그것은 일상 속에서 낭비되는 시간이 최소화하는 결과를 의미한다. 스마트워치나 핸드폰을 통해서, 우리는 일을 하는 도중에도 필요한 소식이라면 무엇이든 즉각적으로 알림으로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편리함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 것 역시 분명하다.


  '필요'는 줄어들고 '자유'가 늘어나는 세상은 점점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두가 더 적은 대가를 치르면서 더 넓은 세상과 접촉할 자유를 향유하고 있다.



  모든 작업이 스마트폰과 컴퓨터만으로 해결되고, 기기 하나로 자동차부터 냉장고까지 컨트롤할 수 있는 세상은 단순히 편의와 시간 절약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원하는 대로 온갖 사물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는 세상을 인간의 의도에 따라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가. 인터넷이 지금보다 뿌리를 깊게 박은 세계란, 인간이 감히 신과 같은 권력을 갖는 무대다. 과학의 힘으로 세상을 설명할 권리를 신에게서 가져간 인간은, 기술의 힘으로 세상을 움직일 권능까지 가져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뭉치기 위해 몇천 년 동안 받들어 온 신에 바친 권위를
다시 자신의 손으로 되돌려 놓으려 하고 있다

  물론 이 자유와 권력 역시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초연결 속의 자유는 뒤집어 보면 네트워크의 바다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과 기기를 활용해 그 기능을 만끽하는 동안, 자연히 그들에 의존하게 된다. 무언가를 잊어버릴 때마다 외울 생각은 하지 않고 검색 엔진을 뒤적이는 선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기계와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만큼, 연결이 끊어졌을 때 우리는 무력해진다. 인간은 대상을 통제하는 것이지, 그 역량을 흡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초연결 사회를 구축함으로써, 인간은 네트워크와 하나가 된 삶을 살아갈 운명으로 나아갔다. 비연결 상태일 때 무력해진다는 잠재적 불안감을 연결 상태에 누릴 수 있는 만족이 압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보와 지식의 바닷속에서 필요한 것을 찾아 목적에 맞게 활용하고, 본 적도 없는 상대와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며, 앉은자리에서 상품과 증권을 거래할 수 있다. 인간은 네트워크에 융합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이 네트워크와 반쯤 한 몸이 되었다는 말에 거부감이 느껴지거나, 이에 동의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삶의 반은 현실 세계에, 그리고 나머지 반은 가상 세계에 있는 세상은 '메타버스'라는 간판을 달고 우리의 눈앞에 벌써 와 있다. 어쩌면 인터넷으로 인한 문명의 본격적인 변화는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



(※ 인용문에 Mapo 꽃섬 서체를 사용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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