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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Oct 10. 2021

세상의 중심을 옮기는 도전, 메타버스

창조적 파괴이자 파괴적 창조가 될 신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생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기본값으로 생각한다. 다른 이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치는지 끊임없이 의식하고, 월급을 받기 위해 깨어 있는 시간의 2/3 가까이를 좋아하지도 않는 일에 소모하고, 인간관계를 균형 있게 유지하는 피곤한 줄타기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좋든 싫든, 많은 이들이 현실에서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그리고 어떻게 보이는 존재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틈틈이 모바일 게임 앱을 열어 플레이를 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실존하지도 않는 캐릭터와 아이템을 위해 현실에서 번 돈을 게임 머니로 바꾸어 소비한다. 먹고살기 위해 힘들게 번 소중한 돈을 데이터 조각으로 변환하는 모습은, 현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인드와 상충한다. 굳이 돈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일상에서 우리는 실체가 없는 것들을 바라보는 데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모순되게 만든 것은, 바로 추상적인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과 새로움에 대한 본능적인 열망이다. 그 둘이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 속으로 함께 입장함으로써, 물리적 현실에 매여 있던 제약이 깨지고 신세계 속의 가능성이 피어났다. 창조적 파괴와 파괴적 창조를 동시에 불러일으킨 메타버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인간은 항상 더 나은 것,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러한 바람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세상에는 상상을 제약하는 물리 법칙이 너무나 많고,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무엇보다, 기술로 가능한 선 안에서도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다. 대상의 희소성은 진입 장벽을 높이 쌓아 올린다. 결국 대다수가 바람을 이루지 못한 채 불만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인터넷의 개방으로 인해 시공간이 제약이 허물어지며, 상황이 반전될 기미를 보였다. 경험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물리적인 장벽이 사라지고, 미지의 땅이자 모두에게 열린 끝없는 세계가 열렸기 때문이다. 가상공간에서는 주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로든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으며, 대가를 지불하면 현실에서 누릴 수 없는 체험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할 기회에 대한 열망은 물리적인 대상과 추상적인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상술했듯이, 인간에게는 추상적인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소중한 시간을 값진 경험으로 남길 수 있다면,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현실적인 체험과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만족감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돈을 투자한다. 경험을 사고자 하는 이들에게, 네트워크 상의 결제 행위는 돈을 데이터 조각으로 바꾸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의미한다.


  넓게 보면 메타버스는 자신이 바라는 시간을 위해서라면 돈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는 수요자와, 그들을 만족시킬 컨텐츠와 세계관을 제공하는 공급자의 시장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리적 현실에 존재하는 갖가지 제약과 위험 부담은 가상 세계까지 따라오지 못한다. 네트워크 상의 마켓은 대형 마트만큼 공간적인 한계와 유지 비용에 구애받지 않으며, 3D 시뮬레이션 안에서 건축사는 인명이나 재산 피해가 발생할 우려 없이 설계를 구상함으로써 더 창의적이고 효율적으로 건설을 계획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말미암아 시기가 확 당겨진 언택트 시대를 맞아서, 사람들은 물리적 제약을 극복한 협업의 가능성을 보았다. VR 시뮬레이션이 범용적으로 이용되고, 양자컴퓨터로 빅데이터를 지금보다 편하게 처리할 수 있는 세상에서 메타버스가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 짐작할 수 있겠는가? 통근 시간을 아낀 직원들이 더 나은 능률을 발휘하고, 데이터를 몇천 배는 더 효과적으로 다루며, 계획을 보다 효과적으로 검증하는 회사가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좋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소비자와 생산자의 활동 영역이 메타버스로 이동한다는 것은,
세상의 무게중심이 물리적 현실에서 가상현실로 옮겨감을 의미한다

  기술 강국들이 데이터의 전송 효율을 높여줄 5G, 6G 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5G와 6G, 7G는 방대한 데이터가 기업의 내외부로 더 효과적으로 이동하게 해 줄 것이며, 더 높은 그래픽의 퀄리티를 보장할 것이다. 그리고 양자컴퓨터의 압도적인 데이터 처리 능력은 인공지능의 개발을 촉진해 모든 분야에서의 비용 감축을 도모할 수 있다. 모든 기술 발전이 메타버스의 성장을 가속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세상의 중심이 가상현실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직 신세계에는 빈 공간이 많이 남아 있으며, 채워진 공간에도 현실만큼 단단한 질서가 확립되어 있지는 않다. 그 말은 곧, 메타버스에 새롭게 진입하는 사람이 현실보다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실에서 사람들이 여러 역할을 수행하면서 각자 다른 위치에 놓인 '부캐'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여러 사이트에서 활동하면서, 개인은 현실에서 이루기 어려운 지위 상승까지 노릴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도 어디에서 어떤 것을 하는가에 따라, 현실에서보다 강한
운명의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메타버스가 가진 최고의 흡인력이다

  모든 사람은 태어난 순간 가정환경과 생활 여건처럼 전혀 제어할 수 없는 변수에 의해 인생의 경로가 좌우되는 불평등한 출발선에 선다. 그러나 아직 개척되지 않은 열린 세계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뛰어들 타이밍과 영역을 적절하게 고르면 선두주자의 이점을 누리거나,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기에 유리하다. 돈의 논리와 보이지 않는 권력에 의해 왜곡된 경쟁 질서에 지친 사람들일수록, 아직 압도적인 존재의 장악력이 떨어지는 신세계의 미개발지에 느끼는 매력이 클 것이다. 균일한 스타팅 라인은 절대 다수의 로망을 자극한다.


  메타버스는 현실세계의 위계가 그대로 복사되어 있는 곳이 아니다. 애써도 바꿀 수 없는 경직된 질서에 질린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곳이 VR, AR로 즐거움까지 안겨준다면 그것을 거부할 이가 있을까. 그들은 현생에서 시달리며 번 돈과, 바쁜 일상 속 작은 여유 시간을 기쁘게 가상현실에 투자할 것이다. 물질세계보다 가상 세계에서 더 큰 삶의 보람을 느낀다면, 개인 단위로도 메타버스가 현실을 앞지른다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신세계가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이 그것일지 모른다.


  약 500년 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순간, 세계사는 격변의 시동을 걸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풍부한 자원이 구대륙으로 이전되고, 유럽이 다시 신대륙을 시장으로 삼으면서 막대한 부가 창출되었다. 새로운 시장이 주는 새로운 기회가 얼마나 큰 역사적 파급을 일으킬 수 있는지 이미 증명된 상황에서, 이번에는 아예 신세계가 만들어졌다.


  배를 타고 대양을 횡단하는 리스크를 극복한 이들만이 기회의 땅을 밟을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네트워크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누구나 기회를 캐치할 수 있는 상황이다. 메타버스는 일상의 활력소부터 돈을 벌 기회, 신분 상승의 꿈까지 제공하며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으며, 그들이 기꺼이 내놓는 돈을 중심으로 신세계에서도 시장이 끝없이 퍼져나가고 있다. 신세계를 채워갈 모든 카드는 이미 갖춰졌다.


만족을 모르는 인간을 닮아 한없이 팽창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역시,
자신의 몸집을 감당할 새로운 공간이 필요한 참이었다

  자본주의는 한없이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을 동력원으로 삼아 기술이라는 모터를 돌리며 작동해 왔다. 하지만 메타버스에 시공간의 제약이라는 브레이크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리적인 한계를 벗어남으로써, 인간은 더 많은 것을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가상 세계가 물질세계보다 더 빠른 팽창 속도를 가진 상황에서 인간이 물질세계보다 가상 세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 그 시점부터는 '세상의 중심이 바뀌었다'라는 말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인류사가 길어질수록 후대가 배워야 할 역사적인 성취가 많아진다. 인류의 스토리도 제법 길어졌기 때문에 중요한 전환점이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자주 발생한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대사건은 아마도 미래에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신세계의 발명'은 신대륙의 발견만큼이나 거대한 이정표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미래는 메타버스가 자신의 포텐셜을 증명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 인용문에 Mapo 꽃섬 서체를 사용하였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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