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의 끝

by 해랑

지난 수십 년간 미디어와 광고는 우리에게 인생이란 끊임없이 즐겁고 활기차야 마땅하다고 세뇌해왔다. 유심히 살펴보면 휴대폰, 자동차, 맥주, 보험, 소프트웨어 등 종류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광고는 즐겁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활용한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젊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나 행복한 가족의 모습, 부유한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이들이 주장하고 싶은 바는 충분한 시간과 돈(과 우리가 팔고자 하는 제품)이 있다면 이렇게 끝없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잠시라도 심심한 상태는 온전하지 않고 부족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현대인들은 쉴 틈 없이 새로운 경험을 하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가지고, 즐겁게 웃으며 삶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제대로 사는 방법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게다가 과거에는 신분이나 재산에 따라 재미있는 활동을 할 수 있는 한계가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게임, 동영상, 만화, 소설 등을 접할 수 있다. 어느 시대나 일시적인 심심풀이를 제공하는 오락거리는 있었지만, 현대인들은 비유하자면 이런 자극들에 포위되어있는 셈이다. 그야말로 만인이 공평하게 즐거움을 추구할 권리를 지닌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모두가 손만 뻗으면 재빠르게 쾌락을 얻을 수 있게 되었지만, 많은 이들이 행복하기는커녕 불만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즐거움을 약속한 전자기기들은 우리를 중독 상태로 몰아넣었다. 기술적인 발달과 물질적인 풍요로 쾌락의 총량은 과거보다 늘어났을지언정, 그 결과로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고 충만해졌는지에 대답하라고 하면 고개가 절로 가로저어진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은, 인간은 정말로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끝없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인가 하는 것이다. 그 답을 알기 위해 감정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감정에 대한 통상적인 견해는 즐거움, 짜릿함, 성취감과 같은 감정은 많이 느낄수록, 불쾌감, 초조함, 절망감 같은 감정은 적게 느낄수록 좋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좋은 감정을 많이 느끼고 나쁜 감정을 적게 느끼는 삶이 (당연히)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정신이 한 방향의 감정만을 지속해서 느낄 수 있도록 발달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감정은 마치 실에 달린 추와 같아서 똑바로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면 흔들리지 않지만, 한쪽으로 밀어 올린 후에 손을 놓게 되면 앞뒤 좌우로 사정없이 흔들리게 된다. 아무리 우리가 돈과 여유가 넘치고, 심지어는 정신을 훈련한다고 하더라도 긍정적인 감정만을 느낄 방법은 없다. 마약 중독이 이런 경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은 약을 투입하는 즉시 더없는 희열을 느끼지만 수 시간 이내로 그런 느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약을 하기 전보다 훨씬 처참한 기분으로 가라앉는다고 한다. 우리가 즐거움과 쾌락을 찾아서 하는 모든 행위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우리를 고양했다가 가라앉힌다.


마음이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이유는 감정 자체가 행위에 대한 보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행위에 대한 만족감이 오래 간다면 계속해서 닥쳐오는 다른 문제들에 대응할 유인이 떨어질 것이고, 이는 생존에 적합하지 않다. 그 때문에 건강한 뇌는 우리가 오랫동안 들떠있거나 가라앉는 것을 경계하고, 강렬한 고통이나 쾌락을 느끼게 되면 이를 상쇄할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발달했다. 다시 말해, 긍정적인 감정만을 느끼고 부정적인 감정은 몰아내려는 시도는 많은 경우 부질없다. 우리가 계속해서 자극을 찾아다닐 수는 있지만, 정신은 이런 불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시 반대 방향으로 감정의 추를 움직일 것이다. 인간이 살아있는 이상, 즉 숨 쉬고 움직이고 먹고 사람들을 만나는 이상 감정적 동요가 없을 수는 없다.


좋은 기분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짧고 단순한 쾌락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 수상하거나, 일확천금을 얻게 되거나, 꿈에 그리던 직업을 가지게 된다고 해서 그 만족감이 영원하지는 않다. 오락이나 약물에 의한 쾌감보다는 큰 성취에 의한 기쁨이 오래갈 수 있을지언정 끝이 있다는 데서 둘은 동일하다. 인생을 바꿀만한 거대한 행운이나 긍정적인 변화로 인한 기분의 고양감은 며칠에서 몇 달 이내로 사라지고, 새로운 상태에 적응하여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돌아오게 된다. 따라서 설사 당신이 일시적인 자극이나 쾌락은 지양하고, 건설적이고 성취 지향적인 삶을 설계하며 굵직한 성공을 맛본다고 하더라도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에 가까워진다고 볼 수는 없다.


성취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성취로 인해 당신이 이전보다 평균적으로 더 즐거워지거나 아니면 최소한 덜 우울해지기라도 바란다면 그것은 잘못된 기대이다. 우리는 모든 성공과 좋은 일에 적응하여 무감해지도록 진화했으며, 사실 그렇지 않았으면 인류가 오늘날까지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없이 기쁘거나 들떴을 때, 이것이 단지 행위에 대한 반응임을 이해하고 곧 없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붙잡는다고 붙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신이 감사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금방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태가 부족하거나 불만족스럽다고 해서 더 많은 즐거움을 찾아 나서면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모든 사람은 즐거움의 끝에 가라앉은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앞서 비유했듯이 감정이 실에 달린 추와 같다면, 중력의 방향대로 곧게 위치하여 위나 아래 또는 좌우로 흔들리지 않는 것을 감정의 원점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감정의 안정된 상태를 지루함으로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마음이 어느 특정한 감정에도 지배당하지 않고 무심의 상태에 머무는 것은 지루함이 아니다. 그것은 고요이고 평온의 경지이다. 이 상태에 들어서면 어느 것이든 깊이 관찰할 수 있으며, 어떠한 고민이나 불안도 들지 않기 때문에 절대적인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고요의 상태에서는 이 상태에서 더 좋은 상태로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들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즐거움을 찾아 성취나 물질에 의존하는 동안은 늘 다음 것을, 더 즐겁고 흡족한 것을 찾아 나서려고 한다. 이때 뇌는 자극을 찾아다니기 위해 예민해지고 하나의 자극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음 자극을 찾아 나서지만, 원하는 수준의 충만함이나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 설령 당신이 고심하여 장기적인 계획이나 큰 성취 등 유익한 것들로만 기쁨을 찾고자 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반드시 끝이 있다는 점에서 그런 식으로 고양감을 아무리 느낀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허무를 맛보게 된다.


돈이나 권세에 대한 욕심은 수월하게 버린 사람도 자기 자신이 반복적으로 찾던 즐거움에 대한 욕심을 버리기는 어려워한다. 수십 년을 살아가면서 기쁨을 주는 대상을 하나도 마음에 들여놓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제아무리 정제된 것일지라도 감정에 대한 의존은 고통의 전초이며, 진정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외부의 어떤 자극에도, 어떤 즐거움의 약속에 기대지 않더라도 온전한 것이다. 당신이 습관적으로 찾는 것들도 당신이 기대하는 만큼 완전한 만족감을 주는 것이 아님을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것이다. 지극한 즐거움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야 고요에서 머물기를 좋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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