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상티망에 대한 경계

by 해랑

철학자 니체는 사회적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심리적 좌절감과 타인에 대한 시기심,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정당화하기 위한 가치체계 전복 시도를 설명하기 위해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요즘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로는 정신 승리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여우와 신포도 우화는 르상티망을 잘 보여주는 예시이다. 이야기 속에서 여우는 포도를 먹기 위해서 담장을 넘으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실패하게 되고, 반발심으로 "어차피 저 포도는 신 포도일 거야"하고 돌아서 버린다. 여우의 르상티망이 발동한 것이다.


세상에는 "값이 비싼 아파트에 살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행복해"라거나, "외제 차를 끌고 다니는 건 허영심 가득한 사람들뿐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얼핏 물질적 탐욕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사회적 기준에 신경을 쓰고 있다. 진정으로 값나가는 집과 차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은 타인의 집이나 차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고, 그 때문에 남들과의 비교나 가치 판단을 내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여 사회적 기준과는 다른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은 늘 위와 같은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아무리 사회적 가치를 따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생각하는 진리만을 우월한 것, 그 외에는 전적으로 무시하거나 부정해도 되는 열등한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런 견해야말로 아집과 자아도취로 빠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우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오로지 자신이 남들보다 얼마나 더 낫거나 못한지에만 골몰하게 되고, 평온으로부터는 멀어진다.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낫거나 못하다고 보는 태도는 자기 확신의 부재를 증명한다. 사회적 기준을 강하게 비난하고 부정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사실은 자기 자신의 "부족한" 면모와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사이의 충돌을 해소하고 싶어 한다. 인간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이 존재할 때, 자신의 신념 체계를 망가뜨리지 않는 선에서 간극을 좁히고자 행동하므로, 바꾸기 어려운 것(자신의 현실)을 건드리는 대신 바꾸기 쉬운 것(본인의 가치판단)을 수정하려고 한다. 이러한 자세는 사회적 성공을 깎아내리려는 부질없는 시도로 드러난다.


마음은 습관적으로 줄 세우고 우열을 가르기를 좋아하므로, 사회적 기준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기를 거부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깎아내리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사회에는 승자와 패자가 늘 존재해왔으며, 인류가 아무리 정신적으로 성숙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을 평가하고 줄 세우는 개념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무척 당연하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삶은 쉽게 열등감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진정으로 현명해지기 위해서는 사회적 기준에 이렇다 저렇다 가치 판단을 내리지 않고, 어떠한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은 무척 현명하며 사회적으로도 존경받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은 깨달음을 얻고도 재산이나 명예는 전혀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당신이 남들보다 이르게 또는 늦게 또는 영원히 성공하지 못하는 것과 당신이 현명하게, 괴롭지 않게 살아가는 것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추구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당신의 인생에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다. 당신보다 순전히 가족을 잘 만나서, 운이 좋아서, 타고난 재능 때문에 성공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은 당신을 더 못나거나 더 잘나게 해 줄 수 없다.


주변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훌륭한 지인들이 많다는 것은 내 안의 르상티망을 점검하는 데에 다행히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나는 그들과 비교해 나 자신을 비하하거나 반대로 그들의 성취를 깎아내릴 의도가 없다. 내가 어떤 삶을 살지는 외부의 칭찬이나 비난이 아니라 오롯이 나의 선택에 달린 일임을 이제는 이해한다. 포도가 신지 단지를 따지지 않고 그저 포도가 거기에 있음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르상티망은 물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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