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 관심 있다면 한 번쯤 행복을 조건부에 걸지 말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집만 사면, 완벽한 반려를 찾아 단란한 가정을 꾸리면, 취직만 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는 것이 행복을 조건부에 거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처럼 조건에 행복을 기대하지 말라는 주장은 종종 과도한 욕망을 줄이고 사소한 일상에서의 행복을 찾으라는 뜻으로 통용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진정으로 중요한 지혜는 A를 바라면서 B를 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라는 사실이다.
만약에 다람쥐가 콩을 땅에 묻으며 도토리가 자라길 바란다면 이는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원인가?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주변 사람들의 행동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저마다 원하는 것의 차이는 다소 있지만, 대부분 말로는 무언가를 원한다면서 실제로는 다른 행위에 골몰하며 원하는 것이 저절로 따라오기를 바란다. "그야 당연히 원하는 걸 쉽게 구할 수 없으니까,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기 때문 아닌가?"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식으로 단계를 밟는 것은 결코 당신이 원하는 핵심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니다. 삶의 여러 조건을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콩을 묻으며 도토리가 자라길 바라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을뿐더러, 당신을 더 깊은 고통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사람은 쿠키를 먹을 때 행복하다'고 믿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실제로 쿠키 한 개를 먹으면 사람은 어떻게 느끼는가? 만족스러운가, 더 먹고 싶은가? 열 개를 먹으면 질리는가? 아니면 더 먹고 싶은가? 정답은 사람마다, 그리고 같은 사람이라도 상황마다 다르다. 다시 말해 쿠키를 먹어서 행복해질지는(당신의 믿음과 달리) 상황에 따라 참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다. 쿠키 한 개를 먹으면 그 결과로 쿠키 한 개를 먹은 내가 될 뿐이고, 열 개를 먹으면 열 개를 먹은 내가 될 뿐이다. 쿠키는 오로지 쿠키를 먹고 싶은 욕구를 해결할 때에만 도움이 되며, 쿠키를 먹음으로써 어떤 부수적인 효과(만족감, 행복감)가 생기는 것은 그날의 운과 컨디션에 따른 것이지 절대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쿠키만 손에 넣으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착각하여 평생 쿠키를 모으듯이 살아간다.
시험에 합격하는 것, 집이나 차를 장만하는 것, 원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는 것도 행복을 위한 단계나 조건이 아니다. 시험에 합격하면 시험에 합격하게 될 뿐이고, 가정을 꾸리게 되면 그저 가정을 꾸리게 되는 것이다. 그 이상의 만족감이나 행복을 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며, 한동안은 무척 행복했다가도 곧 적응되어 그런 느낌이 사라질 수도 있다. 만약에 바라는 것이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면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얻으면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욕구를 충족시켰다는 점을 이해하면 된다. 단, 그것이 별개의 욕구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나,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싶은 욕구 등을 충족시켜주리라고 기대하는 순간 괴로워질 것이다.
무엇을 원하든 그것이 분명하기만 하면 내적인 갈등이 사라진다. 원하는 것이 자동차나 직업처럼 구체적일수록 이루기 쉽다. 막연하게 행복하기를, 만족하기를 원한다면 무엇을 추구하든 그 결과로 허무나 실망감 외의 다른 것을 얻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낭패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사소한 것일지라도 현재 자신의 상황에 맞게 구체적으로 원하는 것을 생각해보고 그것을 구하면 된다. 그리고 구하지도 않은 일들까지 줄줄이 손에 들어오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기대는 버리면 삶에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수 있다.
원하는 것을 분명히 하고, 구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일치시키는 간단한 원칙만 지켜도 멋대로 기대하고 실망하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원하는 것이 분명할수록 이는 쉬워질 것이고, 만약에 노력의 결과로 그것을 얻는다면 기대한 바를 이루었으니 그만큼 만족할 것이며, 반대로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필요 이상으로 좌절하거나 실망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하는 사람만이 쓸데없는 것에 휘둘리지 않고 분명하게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얻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