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힐리즘 정거장

by 해랑

니힐리즘(허무주의)은 인간이 만든 가치를 전부 부정하고, 인류는 객관적 진실이나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고 믿는 철학적 견해이다. 허무주의에 따르면 인생은 근본적으로 의미가 없고, 참된 진리를 아는 사람은 없으며, 우리가 실재한다고 느끼는 모든 것들은 나 자신의 존재를 포함하여 실존하지 않는다. 일견 허무함은 존재의 의문에 대한 필연적인 결론처럼 보인다. 모든 사물이나 사건, 지식, 예술, 심지어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다 보면 그 끝에는 반드시 객관적인 실체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실체가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으니, 자연스레 허무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다.


인생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과도한 기대를 걸게 되면 자연스레 허무함을 맛보게 된다. 많은 이들은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을 합리화하고자 이 과정만 지나가면, 내 노력이 결실을 본다면, 또는 운만 따라준다면 드디어 삶의 빛을 찾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런 사람들이 실제로 성공을 손에 거머쥐면 어떻게 되는가? 허무해진다. 크게 성공한 사람에게 우울증이나 다른 정신적 어려움이 생기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제아무리 큰 성공이라고 해도 이루고 나면 이미 일어난 것, 평범한 것, 시시한 것,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 된다. 성공하기 전에는 아무리 힘들고 고되어도 목표와 기대할 것이 있지만 정말로 손에 결실을 쥐게 되면 어떤 깨달음이 닥친다. 나는 어제와 다르지 않으며 앞으로도 여전히 일상을 살아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이전보다 물질적으로 풍족하고 사람들에게 존경받을지언정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도 매일 발을 씻고 이를 닦고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이것이 모든 성취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허무를 극복할 수 있을까? 허탈함에 빠지지 않는 첫 번째 방법은 계속해서 과정에 있는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무언가가 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할 때에는 허무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예컨대 수험 생활 중에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허무를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시험의 결과를 받아 들고 나면 급속도로 허무해진다.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든, 그렇지 못하든 긴 시간의 노력과 인내가 단 한 장의 성적표로 요약되기 때문이다. 그런 공허가 나를 덮치지 못하도록 또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것, 하나의 성취가 끝나기가 무섭게 두, 세 개의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것은 허무로부터 멀어지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수많은 성공적인 사업가, 예술가, 연구자들은 실제로 이런 방법을 택했다. 이렇게 살면 인생에서 평균적인 사람들에 비해 훨씬 많은 성취를 이룰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한계에 부딪히면 결국에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삶에 어떤 거창한 의미가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은 허무에 빠지지 않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애초에 의미에 대한 집착이 없는 사람은 새삼 허무를 느낄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공부에, 우리의 직업에, 우리의 정치적 참여에, 종교적 활동에, 우리의 가족생활에 반드시 진리를 찾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사회를 개혁하거나, 더 많은 사람의 영적 성장을 도모하거나, 가족관계를 돈독히 하는 결과, 즉 의미가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마음이 멋대로 만든 망상이다.


우리가 무얼 하든 이리저리 애쓰고, 고뇌하고, 행동하는 것 자체가 그 행위로부터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어쩌다 하나의 분야에서 대단히 성공적인 결과를 낸다고 하더라도 그게 인생의 모든 고뇌에 대한 답이 되어줄 수는 없다. 이를 분명히 알게 되면 어떤 것이든 자유롭게 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이 생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조망하면 삶은 언제나 부족한 것, 실패한 것 천지고 어떤 깨달음이나 빛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수많은 순간이 모여 대부분의 일상을 채우지만, 그 모든 찰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마음을 무력하게 만드는 허무는 사라지고 정신은 가벼워진다.


인생은 넋을 놓고 있다가 환승역에 도착하여 허둥지둥 내리는 것처럼 엉겁결에 시작한다. 우리는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 채 도착해서, 차례가 오면 반드시 떠날 것을 알고 살아간다. 실제 기차역처럼 세상은 내가 있을 곳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도, 무언가가 반드시 갖춰지거나 없어야 하는 곳도 아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잠시 있을 만한 자리를 찾고, 사람들이 제각기 떠드는 것을 주워듣고, 출출하다면 간식을 사 먹고, 나의 차가 도착하면 올라서 떠나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이 과정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면 당신에게 기왕이면 다채롭고 좋은 경험을 하고 싶다는 기대가 있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화려하고 볼만한 인생이라고 한들, 모든 사람에게 이곳은 목적지가 아니다. 광대한 우주의 시공간 속에 한 개의 행성을 잠시 거쳐 가는 것이 인생이다. 생이 우리에게 약속한 것은 임시로 지낼 장소를 빌려주는 것뿐이며, 그 이상의 모든 것은 전부 덤이라고 볼 수 있다. 이곳에 어떤 의미나 보람이나 벅차오르는 감각이 존재해야 한다고 믿은 것은 오로지 우리뿐이다. 그토록 무엇을 찾아 헤매는 것을 멈추고, 과도한 기대를 내려놓으면 허무는 사라지고 생생한 의식이 그 자리를 채운다.


생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에서 허무는 꼭 한 번쯤은 거치게 되는 정거장이다. 가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우연이 겹쳐 이곳에 도달했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존재를 누릴 권리가 있다. 때가 되면 떠나겠지만 그때까지 우리에게는 어떠한 의무도 없다. 우리는 세상의 구경꾼이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들으며 때때로 끼니를 해결하면 그만인 지나가는 나그네이다. 근거 없는 낙관을 지나, 바닥없는 비관을 넘어, 마침내 아무것도 없다는 허무에 도달했다면 조금 쉬어도 된다. 한숨을 돌리고 나면 그곳이 종착지가 아니며, 여전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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