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경험'에 나를 놓아둠_1
캘빈은 비정부 환경단체인 머드피시 노 플라스틱(mudfish no plastic, 편의상 ‘머드피시’라고 부르겠다)을 소개해주었다. 이 환경단체는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학생과 지역 사회를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번 주에 머드피시의 활동에 참여하여 사진 찍는 봉사를 할 예정이니 관심이 있다면 나도 오라고 초대했다. 보육원은 아니지만 궁금해서 가보기로 했다.
캘빈이 고지해 준 대로 발리 덴파사르에 있는 마하사라스와티(Mahasaraswati) 대학교에 방문했다. 대학교 한 강의실에서 머드피시의 프레젠테이션이 열리고 있었고 학생들과 관계자들, 교수님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발표자인 모라는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한 발리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설명한 뒤,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대학생들이 머드피시가 운영 중인 교육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동참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취지의 발표였다. 발표가 끝난 뒤 질문도 받고 캠페인 송도 함께 부르며 화기애애하게 프레젠테이션이 마무리되었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대학교 교수님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갑자기 찾아간 손님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캘빈에게 머드피시의 멤버인 모라와 데이비드를 소개받았다.
알고 보니 발리는 바다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발리는 분리수거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쓰레기 처리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있지 않다고 했다. 인도네시아는 우리나라처럼 비닐봉지를 유료화하고 텀블러 사용을 권장하는 활동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고 고착화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나중에 모라, 데이비드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나라는 이미 분리수거가 생활화되어 있고 교육이 비교적 잘 되어있는 상태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모라와 데이비드와는 세 번 정도 얼굴을 봤다. 둘은 나중에 소개할 내 전시회에도 찾아와 주었고 머드피시 사무실에도 초대해 주었다. 두 친구는 특히 어린이나 청소년시기부터 환경보호가 생활화될 수 있도록 교육되어야 함을 중요시 생각한다. 그래서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하는 캠페인 송을 만들거나 학교에 직접 찾아가 아이들과 함께 에코백을 만들기도 하고 자신들이 제작한 텀블러를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다.
모라는 수마트라 출신으로 주관이 뚜렷하고 언변이 좋고 영어도 잘한다. 데이비드는 이탈리아사람으로 이전에 발리에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왔다가 정착했다고 한다. 머드피시의 베이스캠프는 데이비드와 또 한 명의 멤버 젤리가 사는 집이다. 즐겁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이 건전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이 친구들을 만나고 두 가지를 느꼈다. 나는 그다지 환경문제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과 공익을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자신들의 소신을 잃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었다. 근 4년 간 내가 하는 일이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지 고민하기보다 표준화된 과업(?)을 실천하고 부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일해왔다. 하지만 이 친구들은 직업이 단순한 생계 수단이나 부자가 되기 위함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지구에게 도움이 된다는 신념으로 뜻을 펼치고 있었다. 돈을 넘어선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모이면 부동산이나 재테크 관련 이야기, 부업이야기 등 무엇으로 돈을 벌고 모을지가 주요 대화 주제였는데. 전혀 다른 바운더리의 신념을 가지고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들을 통해 나도 작은 일이더라도 다른 사람과 환경을 도울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테이크아웃을 할 때에도 의식을 가지고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게 되었다. 친구들의 신념과 활동을 응원하다 보니 나 또한 그들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게 되었다. 우붓의 한 라멘집에서 내가 플라스틱 페트병에 담긴 물을 마시는 걸 보고 아직도 페트병을 사용하냐며 머드피시 텀블러를 선물로 준 데이비드와 모라의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