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에 나를 놓아둠
3월 24일, 발리에 온 지 45일째 되는 날이었다. 너무 더운 길리섬(발리 동쪽에 있는 작은 섬)을 걸어 다니며 에어컨이 나오는 곳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에어컨을 가동 중이니 마사지를 받고 가라는 호객행위에 홀려 한 마사지 가게에 들어갔다. 발리를 여행하며 아직 마사지를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으니 더위도 시킬 겸 들어가 보았다.
먼저 마사지사가 내 발을 씻겨주었다. 충동적으로 들어간 가게라 아이폰으로 구글맵을 켜서 평점을 살펴보려고 했다.
평점을 살피기도 전에 발을 다 씻겼다고 마사지 룸으로 들어가라고 해서 급히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마사지 룸으로 들어갔다.
단체 마사지 룸에 들어간 나는 홀딱 벗고 담요를 덮은 채로 마사지를 받았다. 마사지 진행 막바지에 나더러 돌아누우라길래 천장을 보고 돌아누웠다. 마사지사는 수건으로 내 눈을 가렸다.
잠시 후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고(아마 이때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을 터) 난 영문도 모른 채 잠자코 마사지를 받았다.
마사지를 다 받고 방에서 나와 아이폰을 찾는데, 없는 것이다. 잉? 그럴 리가 없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직원들과 함께 마사지 룸을 구석구석 뒤졌지만 내 아이폰은 나오지 않았다. 다수의 사람들이 나체로 담요를 덮고 마사지를 받기 때문에 마사지 룸에는 CCTV도 없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일단 호텔로 돌아왔다. 의심하고 싶지 않지만 내 친구(여행 메이트)는 마사지사가 훔쳐 간 것이라고 말했다. 너무 확신했다. 분명 마사지를 받기 전 발을 씻을 때까지는 있었는데 마사지를 받고 없어졌다.
매니저 같은 사람이 열심히 찾아주는 듯했지만 결국 내 아이폰을 찾지 못했다. 그다음 날도 찾아갔지만 못 찾았다.
이게 무슨 일일까…. 발리에서 처음으로 겪는 매우 매우 불행한 일이었다. 아이폰에는 4개월 동안 여행한 치앙마이, 대만, 싱가포르, 발리에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모두 담겨있었다. 사진과 영상들은 아이클라우드에 저장하지 않은 상태였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내 소중한 추억들….
내 친구는 걱정하지 말라며 자신은 발리에서 공용 와이파이만 사용해서 잘 생활하고 있다고 한국에서 가져온 아이패드로 지내보라고 나를 격려했다.
이제껏 발리 사람들은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순수하게 선하다고 믿고 있었는데 내가 너무 물렀던 것일까? 길리사람들은 발리 사람들과 달리 경계했어야 했던 것일까?
2개월 가까이 발리를 천국이라 생각하며 마냥 행복에 들떠 지냈던 나는 갑자기 인도네시아에 배신감도 들고 부주의했던 나에게 자책감도 느꼈다. 예상치 못한 사고에 분하고 무섭고 충격적이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다음 대처를 위해 분명하게 이 기분을 정리해야만 했다. 나에게는 아직 발리에서 지낼 한 달의 계획이 남아 있었다. 아주 짧은 찰나, 이대로 한국에 돌아가라는 신의 계시인가? 싶었지만 이대로 돌아가면 마사지 가게에 지는 기분이 들어 오기가 생겼다.
'그래. 이번 일을 계기로 더 특별한 일들을 해보라는 신호인가 보다. 더 뜻깊은 일들을 해보라는 뜻일 수 도 있어'
다른 방식으로 신과 우주의 뜻을 해석하기로 했다. 지난 45일간 발리에서 여행자들이 경험하는 일들은 거짓 다 경험했으니 남은 한 달간은 나에게 더 의미 있는 경험들로 채워보자. 좋은 만남들도 기다리고 있을 거야! 라며 자신을 다독였다.
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기분으로 마음을 다잡고 발리섬으로 돌아왔다. 더 좋은 일이 가득할 거라 믿었더니 정말 특별한 만남과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