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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미킴 Sep 02. 2021

내 머릿속에는 햄스터가 산다 #2

1부 시나

    어리숙한 계절들을 보내고 나서 나는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도시에 있는 대학에서 미술 공부를 하게 되었고, 학교 근처에 집도 얻었다. 한창 학기 중이었던 어느 날, 나는 눈을 뜨자마자 내 앞에 서 있는 냉장고를 보며 엊그제 만들어 놓은 치킨 스튜를 떠올렸다. 나는 그때만 해도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먹고 싶었으면 좋겠어서 요리를 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현재의 내가 아닌 아닌 미래의 나를 위해, 그것도 아마 음식이 먹기 싫을 미래의 나를 먹이기 위해 요리를 한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냉장고 속에서 초록색으로 또 주황색으로 무안하게 앉아있을 치킨 스튜가 더 늙어 생을 마감하기 전에 해치워 주어야 한다는 부담은 아침 허기를 대신했고, 나는 속이 더부룩했다. 오늘 학교를 다녀온 후, 저녁을 차리기가 귀찮을 것이므로 저녁에는 꼭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엊그제의 실패한 요리사를 위로했고, 학교에 갈 채비를 했다. 가방에 오늘 하루 필요한 것들을 집어넣기 위해 책상 위를 훑어보았다. 오늘 '현대 미술사의 쟁점' 수업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어떠한 종이가 오늘의 과목과 어울릴지 고민했다. 역시 얇고 미끌미끌한 종이를 가진 옥스퍼드 리갈 패드가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황색 표지에 금박으로 무늬가 그려진, 두툼한 모눈 종이가 끼워져 있는 노트에 눈이 가기는 했지만, 역시 퍽 공감이 되지 않는 이론 수업에는 얇은 볼펜으로 낙서하기 좋고 또 찢어 버리기 좋은 리갈패드가 적합하겠다는 생각으로 돌아왔다. 그에 어울리는 얇은 볼펜, 연필, 지우개 등이 들어있는 필통과 늘 들고다니는 수첩, 비는 시간 속에 읽을 시집하나를 가방에 차곡차곡 담았다.


    집을 나서니 여전히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성한 나무들이 도로를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있었다.  나무들은  속으로 뿌리가 너무 커진 탓에 꼼짝없이 정해진 위치에 갖혀버린 신세가 되었다. 나무가 주어진 자리에서 탈출하려면 그를 둘러싸고 있는 벽돌과 아스팔트를 전부 드러내야  것이다. 그러니 나무는 모두가 잠든 깜깜한 밤이 오더라도 몰래 살금살금 도망가기는 글렀다. 그러게 섣불리 살을 찌워서는 안된다. 완강히 뿌리 내리기를 거부하고 적응하기에 저항했다면, 어느 여름 태풍을 만나 쓰러지게 되어 결국 환경단체의 트럭에 실려 근처 숲으로 요양을 가게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문득 이것이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는데, 이것은 내가 알고있는 모든 불행을 걱정하는 나의 쓸데없는 조바심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상의 배움을 거부하고 게으르게 그자리 그대로 말뚝을 박고 싶어하는 나의 욕망을 신이 눈치채고 경고를 보내온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아침부터 잔소리를 듣게 되었다는 생각에 약간의 불만을 느끼며, 몸집이 너무 커버린 나무들의 호위 사이로 학교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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