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일기는 방학마다 주어진 숙제였다. 그때 당시에는 일기를 꼬박꼬박 쓰는 게 버거워 개강하기 일주일 전부터 일기를 몰아서 썼던 기억이 있다. 20대 청춘의 나이에는 타향살이로 연한 분홍빛 양장 노트에다 새카만 연필로 일기를 작성하는 것이 향수병을 견디는 방법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일기장에서 블로그로 넘어갔다. 아마도 글과 사진을 간편하게 올리는 수단으로 블로그를 받아들이기 시작해서 그랬나 보다.
언제부터 블로그에 손을 댔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한동안 볼펜의 동글동글한 촉감을 잃지 못해 블로그를 드문드문 접속했던 몇 년을 이어왔다. 그러다가 약 1년 전부터 지금까지 블로그를 매일같이 드나들고 있다. 블로그를 하는 날에는 시간이 멈춘다. 공중에서 흩날리는 먼지마저 움직이지 않는다. 키보드를 타닥타닥 치는 소리만 정적을 깨워줄 뿐이다. 블로그는 '아카이브(archieve)'에서 '소울(soul)'을 담는 유리병이 되었다.
그동안 블로그는 무형의 일기장으로서 주인장의 자존감을 높이는 공간이었다. 스스로가 흡족할 만한 글들을 쌓아두는 곳간으로서 말이다. 가끔 이웃에게서 얻는 공감은 블로그에 달덩이처럼 환한 불을 켜는 등유가 되었다. 특히나 누군가 댓글로 말랑말랑한 감정을 드러내는 날이면 그날의 기분은 몽글몽글한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고자 써 내려갔던 글이 불특정(다수가 아닌) 소수에게 위로를 전해주었으니 말이다.
이따금씩 블로그를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사유한다. 블로그에서 수익을 얻으려고 결에 맞지 않는 글을 써야 하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기 때문이다. 특히나 블로그로 부수입을 얻고 있는 블로거들을 보자면 내 블로그는 하찮은 존재다. 내가 이러려고 블로그를 하는 게 아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파리가 날리는 식당처럼 조용한 블로그를 유지하는 낙(樂)이 없을 때가 있다. 오늘은 몇 명이나 블로그를 방문했고 글을 읽었는지 숫자를 세는 일이 좀먹지만 이미 중독되어 벗어나지 못하기도 하다.
그러나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자유롭게 칼럼, 일기, 취재 기사 따위를 올리는 웹사이트.'라는 국어사전에 실린 블로그의 뜻을 곱씹으며 정신을 차린다. 누가 뭐래도 블로그는 자유의지로 노래하는, 'OOO'이라는 한 사람만을 위한 무대다. 누군가에게 글이 사랑받기 이전에 내가 쓰는 글에다 사랑을 불어넣는 공간. 일상이 차곡차곡 모여 언젠가 자서전이 될 공간. 그 공간이 바로 블로그다.
오늘도 복잡스러운 생각을 '글'로 조각씩 쪼개어 '블로그'라는 유리병에 담는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는다. 블로그는 누군가를 위한 공간이 아닌, 나를 행복하게 하는 공간이라고. 그리고 그 행복이 네잎클로버처럼 누군가에게 우연히 닿으면 좋겠다는 것은 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