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페퍼톤스의 '공원여행'이라는 노래가 있다. 경쾌한 선율에 순수한 가사가 매력적이라서 공원에 갈 때마다 이 곡을 듣는다. 살포시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 전달되는 노래로 공원은 동화 속 배경이 되고, 마음은 동심이라는 몽글몽글한 구름이 되어 둥둥 떠다닌다. 공원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잠시나마 잿빛 도시인으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이 된다. 공원은 목마름으로 허덕이는 나에게 오아시스다.
공원을 향한 애정은 외국에서도 이어진다. 해외로 여행할 때마다 그 도시의 공원을 찾는다. 공원을 산책하며 현지인의 생활을 엿보고 나라마다 다르게 내뿜는 공원 특유의 공기를 마시는 재미가 있다. 어느 한 이방인으로서 낯선 공원의 낡은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자면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신비로운 감정에 휩싸인다. 때로는 알 수 없는 그 감정에 마음이 일렁인다.
시카고를 여행하던 어느 쾌청한 가을날이었다. 풍미가 가득한 시카고피자를 배불리 먹고 나서 밀레니엄 파크로 산책을 나섰다. 밀레니엄 파크는 초입부터 줄지어 늘어선 거대한 단풍나무가 있었다. 봉숭아 물처럼 붉게 물든 단풍잎들이 소슬한 추풍에 흩날리는 모습은 시야를 오롯이 압도하였다. 이어서 산책로를 덮은 낙엽들의 찬란한 향연에 감정이 벅차올라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을을 선물해준 생경한 공원을 향한 감격의 눈물이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가을은 사계절 중에서 고대하는 계절이다.
밀레니엄 파크에서 감동은 차가운 공기가 지면을 닿을 때도 계속되었다. 은빛 강낭콩 모양의 클라우드 게이트 뒤에는 시카고 시민들의 얼굴을 적나라하게 담은 크라운 분수대가 있었다. 분수대는 남녀노소 얼굴을 번갈아가며 비췄다. 한동안 말없이 분수대를 바라보았다. 장난스러운 입꼬리를 올리는 아이들로 함박웃음을 지었다가 자글자글한 주름이 잡힌 미소의 노인들로 가슴이 뭉클해졌다. 한때 세월의 풍파에 온 힘으로 맞섰고 지금은 여한 없이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그들은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공원 한가운데에서 눈물을 쏟았던 순간이었다.
공원에서 산책길을 따라 걷다가 숨이 가쁠 때면 나무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호흡을 조절한다. 천천히 숨을 마시고 내쉬는 과정에서 그제야 주변 환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삭막한 도시에서 황홀한 자연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푸릇푸릇한 생명력에 감개무량해진다. 이제 공원은 휴식처 그 이상의 공간이다. 산들바람에 살랑거리는 잎새에 과거의 행적을 되짚어 나 자신을 성찰하고 초록빛으로 물결이 이는 자연에서 현재의 삶을 감사하는 장소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