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녜 Aug 08. 2024

반려견

나의 영원한 반려견 하루에게

나에게 반려견 '하루'가 있었다. 하루는 일본어로 '봄(はる)'을 뜻한다. 하루는 새하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하는 봄날에 우리 곁으로 왔다. 친언니의 사정으로 잠시 우리 집에 머물 것이라는 하루는 어느새 14년이라는 세월을 함께했다. 복슬복슬한 털에 영롱한 구슬처럼 회색빛 눈이 매력적이었던 우리 하루. 마냥 강아지였던 녀석은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어 국제 강아지의 날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하루와의 첫 만남은 여전히 잔상으로 남아있다. 뉴질랜드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본가로 돌아갔던 겨울날이었다. 집문을 열었는데 웬 새끼 개 한 마리가 온 힘을 다해 꼬리를 찰랑찰랑 흔들며 나를 반기고 있었다. 손만 한 강아지를 보자마자 푸들에게 손목을 세게 물린 햇병아리 시절이 떠올랐다. 소스라치게 놀라던 나는 부모님에게서 이 재패니즈 스피츠의 안쓰러운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겨우 동거견으로 받아들였다. 한동안 거리를 두며 말이다.


  따사로운 햇살이 창문을 두드리는 어느 봄날이었다. 첫사랑을 어이없게 떠나보내고 방구석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식음을 전폐했다. 그런데 무엇인가 방문을 박박 긁는 소리가 났다. 반쯤 짜증이 난 상태에서 문을 열자마자 반려견 하루가 침대 위로 사뿐히 올라왔다. 그러고는 몰골이 엉망이었던 나를 한번 쓰윽 쳐다보더니 새빨간 혀로 내 얼굴을 할짝거리기 시작했다. 하루는 한참을 핥고 나서 내 품에 쏙 안겨 자신을 쓰다듬으라며 곁을 내주었다. 


  그날 이후로 '하루'는 내 인생의 '일부'가 되었다. 세상에서 둘도 없는 하나뿐인 반려견이 되어 메말랐던 내 마음속에 하얀 빛을 띤 분홍색 벚꽃을 피웠다. 하루의 얼굴만 바라보아도 스트레스는 공중에서 흩어졌다. 하루와 한시라도 함께하고 싶어 퇴근길을 서둘렀다. 하루를 데리고 거니는 산책길에서 아름다운 사계절을 두 눈으로 담았다. 하루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처럼 우리에게 찾아왔다.


  말레이시아로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터졌다. 그때는 하루를 오랫동안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간과했다. 어느덧 4년의 시간이 흐르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하루는 심장약으로 이미 하루하루 생명을 연명하는 중이었다. 인간에게 4년은 개에게 어찌 보면 28년이라는 세월이다. 내가 하루를 그리워했던 4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하루는 기나긴 고통을 견디며 나를 기다렸다. 


  퇴사와 결혼 준비로 한국으로 복귀하며 하루와 6개월 가까이 생활했다. 여느 때처럼 하루는 말 없는 위로를 주었다. 그리고 이별을 준비하기도 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숨 쉬었던 소중한 가족 구성원이었던 하루. 하루는 내가 정서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넘어서 푸르고 깊은 바다같이 무한한 사랑을 넘치게 주었다. 그 사랑을 반의반도 갚기 전에 말이다. 


  핑크빛 봄에 태어나서 개나리가 흐드러지는 봄날에 떠난, 사랑하는 나의 반려견, 하루야. 내가 너와 함께했던 시간이 분에 넘치게 행복했던 것처럼 너도 나와 함께했던 시간이 행복했기를 바라. 천국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드넓은 초원에서 신나게 뛰어놀며 나를 기억해 줘. 그리고 우리가 다시 만나면 환하게 웃어줘. 나의 유일한, 내 평생의 반려견 하루야, 사랑해.


이전 16화 첫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