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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녜 Oct 25. 2024

눈빛이 머무는 곳에

사랑을 말해요

사람이 성형으로 바꿀 수 없는 부위가 있다. 바로 눈빛이다. 나는 상대방의 눈을 지그시 응시하는 습관이 있다. 그 사람의 눈빛을 바라보기 위해서다. 홍콩 배우인 ‘양조위’를 좋아하는 이유도 눈빛에 있다. 스크린에서 비추는 그의 연기에는 눈빛이 서려 있다. 별처럼 반짝이지만 때로는 짙은 슬픔에 잠긴 그의 눈빛. 시리도록 아름다운 영혼이 그의 두 눈에 담겨 있다.


  여느 때처럼 쿠알라룸푸르에서 LRT를 타고 KL 센트럴로 출근하던 때였다. 지옥행 같던 출근길을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이름 모를 음악으로 달랬다. 랜덤으로 노래를 재생하던 중에 가사 한 줄이 귀에 꽂혔다.



  “사랑이 아닌 단어로 사랑을 말해주세요. 그 눈빛에 다 보이게 날 표현해 줘요.”





  싱가포르를 여행하는 셋째 날이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슈퍼 트리 그로브 쇼였다. 이곳을 향하는 길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길까지 헤매 첫 번째 쇼 타임을 놓쳤다. 비를 맞았던 몸이 무거워 근처 스타벅스에서 잠시 쉬었다가 집에 가려는데 두 번째 쇼가 막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발길을 멈추어 쇼를 감상했다.


  쇼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며 빗방울이 잦아들 때쯤 라이언이 뒤에서 나를 안았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Will you marry me?” 하며 프러포즈 반지를 내밀었다. 그의 떨리는 고백에 깜짝 놀라 뒤돌아서 그를 바라보았다. 누군가의 진심을 눈빛으로 읽고 싶던 내가, 눈빛에 다 보일 정도로 어떻게 표현할까 하며 생각에 잠겼던 내가, 그의 눈빛에서 사랑을 읽었다. 이 순간이 영원으로 남길 바라며 “Yes!”라고 화답했다. 그리고 서로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라이언과 연애하는 동안 사소한 다툼이 여러 번 있었다. 연인 사이에서 다툼은 흔한 일이겠지만, 논쟁을 피하려고 마음속에 담아두거나 심해지면 관계를 끊는 나에게는 큰 사건이다. 어느 날, 싸움의 시작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그와 고성이 오갔다. 상황은 분명 심각했다. 이대로 헤어질까 두려웠다. 그런데 그 와중에 그의 눈빛이 나를 사로잡았다. 분노는 없고 그저 사랑만 담긴 눈빛이었다.


  웃거나 울거나 싸우거나 화해하거나 놀랍게도 나를 귀여워하는 라이언의 눈빛은 같았다. 영상 통화로 장거리 연애를 이어가던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다정다감하고 온화한 성격을 넘어서 그의 눈빛이 그와 결혼하기로 결심을 서게 한 이유였다. 매일 아침 사랑스럽게 나를 깨우는 목소리와 따뜻한 눈빛을 평생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그 꿈은 현실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하게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내가 라이언과 결혼을 결심한 이유인 눈빛. 언젠가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이 변할지 가끔 걱정하지만, 퇴근 후 문 앞에서 나보다 더 고생한 그가 "고생했어"라며 나를 한 번 쓱 보고 안아줄 때 그런 걱정은 사라진다. 사랑이 아닌 단어로 사랑을 표현하는 그와 함께하면 굴곡진 인생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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