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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위 Dec 17. 2024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그럼에도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 하면 몽글몽글한 구름이 떠다니는 새파란 하늘을 떠올린다. 직장인이었을 때 스트레스가 쌓이면 잠시라도 사무실에서 벗어났다. 통창으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비타민D를 온몸으로 흡수하며 활기를 되찾았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 침대에 누워 창문 너머로 둥둥 떠다니는 구름을 하염없이 응시한다. 하늘이 주는 밝은 에너지는 나머지 할 일을 마무리하게 하는 추진력이 된다. 다만 바람 한 점이 없는 무더운 날씨에 몸이 지치는 건 어쩔 수 없다. 뙤약볕 아래서 단시간 노출되어도 더위를 쉽게 먹는다. 여름 나라의 분위기가 여유로운 건 아마도 날씨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한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에 바라보는 하늘은 도화지와도 같다. 새빨갛게 타들어 가는 태양으로 하늘도 덩달아 서서히 검붉어진다. 새하얀 스케치북이었던 하늘은 찬란한 색으로 칠해져 예술 작품이 된다. 그렇게 풍경화 같은 노을을 마주한다. 여름 나라의 하늘은 아름다운 선율을 그려내는 공간이 분명하다. 붉은 일몰로 온 집안에 그림자가 일렁일 때 무탈한 하루에 감사를 표한다. 어느 곳에서나 진홍색 노을에 시선을 두고 있으면 오늘 하루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렇게 하루를 되돌아보면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방인이라서 서러울 때가 있다. 산들바람 하나 없는 말레이시아에서 숨이 턱 막혀 불쾌지수가 끊이지 않는다. 보행길이 자주 끊어져 산책하는 것이 곤욕스럽다. 널린 게 공사판이라서 먼지가 집안 곳곳으로 침투한다. 미련하고 답답한 행정 처리에 혀를 내두른다. 현지 음식이 위생적이지 않을 때가 있어 종종 식중독에 걸린다. 문화 차이로 오해가 쌓여 서운하기도 하다. 사주로 따지면 여름 나라와 궁합이 맞지 않는다.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나 혼자 감내해야 하는 고독한 싸움이다. 누구도 대신해서 싸울 수 없어 외롭다.


  그러나 새파란 낮에 이어 붉디붉은 노을이 선연한 하늘은 이방인을 설레게 한다. 불빛이 꺼져갈 때쯤 보랏빛 향기를 발산하기 시작하는 하늘에 경탄하기도 한다. 여름 나라의 하늘은 이방인을 위로한다. 남편은 여름 나라의 하늘과도 같다. 한결같이 그 자리 그대로 있으면서 ‘우리’라는 미래를 고운 색으로 칠하고자 노력하는 라이언이다. 형형색색의 하늘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듯이 남편과 지지고 볶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저 지루한 나날이어도 말이다.





  “왜 하필 말레이시아였을까?”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 바로 남편. 남편이 그 이유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가 말레이시아 사람이라서 그렇다. 그래서 “그럼에도 말레이시아”라는 답변을 덧붙인다.

 

  말라카댁 신혼일기의 마지막 장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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