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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녜 Feb 24. 2022

경청

귀를 기울여 표현하는 애정

우리나라에는 말에 관한 속담이 꽤 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부터,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 “살은 쏘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 줍는다”까지 살면서 한 번쯤 들어보았을 말에 대한 속담은 입 밖으로 던지는 단어 하나하나를 향한 경각심을 높여준다.


  샛노란 개나리색 교복을 입고 웅변 학원을 다니던 때가 기억의 문틈 사이로 빠져나온다. 당시 나는 말이 어눌하다 못해 “엄마”라는 낱말 외에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님께서는 자폐증이 아닐까 하는 자식 걱정에 심리 상담가에게 심리 감정을 요청하셨다. 다행히 아이는 언어 습득 능력이 느린 것뿐이라며, 대신 아이를 웅변 학원에 보내라는 심리 상담가 분의 조언에 따라 지금의 나는 의견을 충분히 피력할 만한 수준의 말솜씨를 갖추고 있다.


  햇병아리 시절부터 말은 중요했다. 고로 말을 잘하는 것은 일생일대의 과제였다. 말을 자유자재로 요리하고 싶어서 말에 대한 책이란 책은 모두 섭렵하려고 애썼다. 말을 잘하고 싶으니 글을 잘 쓰고 싶은 욕망도 불타올랐다. 그러나 간과한 것이 있었다. 말보다 경청이 어렵다는 것을, 그리고 말보다 더 귀중한 것이 귀를 기울여 듣는 자세라는 것을 말이다.


  말레이시아에서 G사의 광고 지원팀으로 한창 일했을 때 필요했던 업무 능력은 광고주의 니즈를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전문 지식이 요구되기 전에 광고주가 겪고 있는 문제를 빠르게 간파하는 게 이 일의 첫 번째 관문이다. 그러려면 당연하게도 광고주의 말의 마디마디를 꼼꼼하게 들을 수밖에 없다. 그래야 문제점에 따른 해결책이 전달된다. 업무의 반 이상이 '잘 듣는 것'이었기에 결국 경청은 습관으로 자랐다.


  그런데 어느새 경청, 귀를 기울여 듣는 자세는 상대방에게 애정을 표하는 방법으로 진화했다. 한때는 인간관계에서 말의 주도권을 다투었던 내가 말레이시아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내 말이 중해서 타인이 이야기하는 도중에 흐름을 끊어버리는 무례를 범하곤 했다. 그러나 듣는 훈련을 반강제적으로 지속하다 보니 상대가 내주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고백을 끝까지 들어야 하는 게 예의이며, 그 예의에 대한 보답은 진심 어린 제언뿐이더라. 평생에 선인이 될 수 없어도 청자로서의 삶은 향유할 수 있는 것은 경청에 대한 개안이었다.


  글을 잘 쓰고 싶으면 책을 읽듯, 말을 잘하기 이전에 상대방의 말을 듣는 연습은 필수이다. 이제 상대가 나에게 진심을 터놓으면 먼저 드는 생각은 '감사'이다. 그리고 감사에 보은하는 도리는 온 정성과 힘을 기울여 속마음을 들어주는 몸가짐이다. 미천한 나에게 참마음을 이야기하는 당신에게 고맙고, 앞으로 당신의 삶에 더욱더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되겠다. 말보다 경청이 우선인 삶, 그것이 사랑하는 이에게 표현하는 '나'만의 애정 방식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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