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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녜 Nov 18. 2021

오늘은 뭐 먹지?

집밥이 그리운 타향살이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바로 한국인은 밥심으로 살아간다는 말을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잘 지내니?”보다 “밥은 잘 먹고 다니니?”로 안부인사를 대신하고, 길거리에서 오랜만에 친구를 마주하면 “언제 한번 밥 먹자” 하며 기약 없이 약속하는 민족은 한국인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밥은 한 끼 식사를 넘어서 거대한 함의로 언어문화를 관통한다.


  이맘때쯤이면 한국은 김장철로 한창이다. 엄마는 아빠와 둘이서 소박하게 열다섯 포기의 김치를 담그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딸의 부재가 컸는지 당신께서 먼저 내가 보고 싶다며, 내년에는 한국에 왔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속을 내비치셨다.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갓 지은 고슬고슬한 흰쌀밥 한 숟갈에 새빨간 양념으로 버무린 김장김치 한 조각을 올려 먹던 소소한 기억이 떠올라, 이날의 영상 통화는 엄마와 늘 했던 전화와 달랐음을 직감하며 마음이 울었다.


  32년 인생에서 타향살이는 뉴질랜드 교환학생 시절과 현재 말레이시아 직장 생활을 합치면 고작 4년 차밖에 되지 않아 명함을 내밀기도 민망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엄마가 차려주신 집밥이 간절해지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이제 김장철이 아니더라도 별거 아닌 반찬에 배불리 먹을 수 있던 집밥이 이토록 그리워지는 건 아마도 “오늘 뭐 먹지?”라는 평생의 난제를 현재 진행형으로 풀어야 하는 압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말레이시아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요리’는 나와는 거리가 멀었던 단어였다. 그동안 요리의 필요성을 체감할 수도 없이 엄마의 품 안에서 그저 편안하게 한 끼를 해결해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역만리에서 배달 음식이나 인스턴트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한계에 다다랐으며, 한때 병원 신세로 애를 먹었으니 스스로 건강 또한 챙겨야 한다.


  요즘에는 눈 뜨자마자 “오늘은 뭐 먹을까?”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건강을 위해서 되도록이면 점심 혹은 저녁은 직접 요리로 해결한다. 메뉴는 음식 콘텐츠를 시청하며 정하고, 레시피는 블로그를 뒤적이며 하나씩 따라 해 본다. 처음에는 서툴었던 요리 실력이 시간이 지날수록 일취월장이다. 이제는 가까운 사람에게 투박한 요리를 대접하는 자신감까지 생긴다. 사랑하는 이들이 식사에 흡족해하는 모습으로 요리에 애정이 점점 깊어진다.


  그럼에도 아직은 온실 속의 화초라서 죄송하게도, 아니 이기적이게도 집밥이 생각난다. 특히 식중독으로 고생해서 위에 무리를 주지 않는 현미밥에 고소한 엄마표 미역국, 그리고 죽어가는 입맛에 심폐를 소생해주는 상큼 달콤한 무생채가 간절하다 못해 눈물이 날 지경이다. “역시 나 홀로 타향살이는 외로운 것이구나” 상기하며 오늘도 무엇으로 한 끼를 먹을지 머리를 쥐어 싸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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