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ny benassi - Satisfation]
자, 이제 실전입니다. 실제로 노래를 들어봅시다. 제일 처음 들어볼 노래는 Benny Benassi의 [satisfation]입니다. 절대 Radio Edit 버전이나 Remix 버전을 듣지 마세요. ‘benny benassi presents the biz’가 발매한 ‘Hypnotica’에 수록된 [satisfation]을 들어주세요(유튜브 청취 금지! 사운드가 제대로 안 들려요~). 몇몇 국내 스트리밍 사이트에는 위에 언급한 앨범이 막혀있을 겁니다. 그럴 땐 베니 베나시의 ‘Real Benny Benasssi & Remixes (Special Edition)’에 수록된 [satisfation]을 들어주세요.
인트로(00 : 00초 ~ 00 : 22초)입니다.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나오는 킥의 모양이 어떻게 들리세요? 모르긴 몰라도 굉장히 거대하게 느껴지실 겁니다. 그리고 자세히 들어보시면, 킥의 끝(소리의 마지막) 부분에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실 거예요. 끝소리가 스왁-스왁-스왁-스왁 대는 것처럼요. 이게 안 들리셔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이 킥이 얼마나 거대하냐, 그리고 어디쯤 위치해 있냐를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00 : 02초부터 나오는 남자 보컬. 킥보다 위에 있죠? 그리고 킥보다 살짝 앞에 있습니다. 그리고 00 : 08초부터 나오는 스네어. 거칠고 지저분하죠. 얇은 종이를 칼로 한 번에 가르는 소리 같기도 하고, 청자의 뺨을 때리는 것 같은 충격을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살짝 오른쪽에 있죠. 그리고 00 : 10초부터 나오는 하이햇. 이 하이햇의 움직임이 아주 중요합니다. 하이햇은 그 뒤에 나올 여성 보컬보다 높은 곳에 있습니다. 하이햇은 살짝 왼쪽에 있죠. 이 하이햇 사운드 역시 아주 거친 소리입니다. 그리고 갈수록 묵직해집니다. 그리고 00 : 21초에 나오는 퍼커션. 이것이 반전의 효과를 줍니다. 누군가가 ‘주목!’을 외치는 것처럼 앞선 상황을 모두 정리합니다. 자, 이제 인트로가 끝났습니다. 인트로에 나왔던 악기들의 위치를 봐볼까요?
이렇게 있네요?
각주 : 이 이후에 나올 모든 곡의 그림은 위치감을 설명하기 위해 단순하게 그려진 그림입니다. 절대적인 지표가 될 수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위치감이나 각 악기의 크기, 그리고 패닝 역시도 그림보다 더욱 세밀합니다. 소리는 기본적으로 움직입니다. 하나의 소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져있지 않습니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는 걸 항상 생각하셔야 합니다.
00 : 22초부터 나오는 신시사이저 소리. 어떠신가요? 저는 마치 공중에서 반짝거리며 회전하는 납작하고 거친 미러볼이 연상됩니다. 소리의 톤 자체가 매끈매끈하다기보다는 거칠거칠하고 반짝반짝거리죠? 그래서 미러볼이긴 미러볼인데 아주 거친 미러볼이 연상됩니다. 지압볼처럼 거친 미러볼이랄까요. 저 멀리 있는 것 같은 미러볼은 00 : 35초에서 00 : 37초에 우리 눈앞으로 다가옵니다. 머리 꼭대기에 있던 것이 바로 눈앞에요.
요녀석이
요렇게 됐다가
요렇게 변했습니다.
00 : 38초부터는 앞에서 들었던 킥이 다시 등장하네요. 주목해야 할 것은 이곳입니다. 00 : 39초, 00 : 42초, 00 : 46초. 세 번째 음의 잔향이, 급가속을 했을 때처럼 훅 들어옵니다. 이 잔향이 마치 밀물처럼 확! 하고 다가오지 않나요? 미러볼인 줄 알았던 그 녀석이 파도로 바뀌었습니다? 갑자기 고체에서 액체로 변했어요.
00 : 53초부터 나오는 하이햇은 정박이 아닌 엇박에 4번 나옵니다. 다시 말해, 킥이 나오는 박자에 함께 나오는 것이 아니라, 킥 사이사이에 하이햇이 나옵니다. 이 녀석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네요. 한마디에 4번씩 나오는 이 하이햇 역시 마치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첫 번째 하이햇은 밀물, 두 번째 하이햇은 썰물 세 번째는 첫 번째보다 더 강력한 밀물, 네 번째는 더 확실한 썰물로요. 파도가 치는 거라고 상상해 보세요.
‘하이햇은 파도다. 파도가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한다. 미러볼에서 파도로 바뀐 신시사이저 사운드 역시 파도다.’
01 : 00초부터 나오는 소리 들리세요? 신시사이저가 나오는 박자에 맞게 바람 소리처럼 피슈슉-하고 들리는 거요. 최상단에 위치한 바로 그 소리 말입니다. 그건 마치 거친 바다의 폭풍 소리 같지 않으세요? 거친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태평양 한가운데, 묵묵히 중심을 지키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킥입니다. 아무런 흔들림이 없죠. 모든 악기가 파도처럼 울렁거릴 때, 같은 음량과 같은 위치에서 묵직하게 나오는 소리는 킥이 유일합니다. 마치 거친 파도에도 흔들림 없는 배처럼요(물론 이런 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배가 시몬스침대도 아니고, 어떻게 안 흔들리겠습니까. 하지만 이곳은 모든 물리학 법칙이 사라진 가상의 공간. 사운드로는 상상하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이 노래를 한 편의 항해 영화라고 가정해 볼까요? 요동치는 파도에 맞서 싸우는, 가끔은 잔잔했다가 가끔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가를 반복하는 그런 어드벤처 영화요.
01 : 08초부터 02 : 36초까지는 앞에 설명드린 것처럼 파도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장면으로 흘러갑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02 : 36초 이후부터입니다. 신시사이저가 공중으로 승천했다가 다시 추락합니다. 소용돌이에 휘말린 배를 표현한 것일까요?
각주 : ‘아니 잠깐, 아까는 킥이 배라면서요?’ 그렇죠. 여기서 중요한 점! 사운드는 유기적입니다. 연결성이 있죠. 만약 신시사이저 멜로디가 아닌 킥이 상단으로 올라갔다면, 갑자기 곡이 요상해질 겁니다. 그래서 유기성이 있는 신시사이저가(비슷한 위치에서 나오던 두 소리)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죠. 우리는 ‘사운드’로 음악을 듣는 것이지, ‘악기’로 음악을 듣는 게 아닙니다. 사운드는 유기적입니다. 서로의 역할을 서로가 대신해 줄 수 있습니다. 그림처럼 피사체가 정확하게 나누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죠.
이 거친 바다는 02 : 45초에서 더 강력해집니다. 전보다 더 거대해지고 더 거칠게 휘몰아칩니다. 쭉 이렇게 이어지다가 03 : 05초에 숨을 돌립니다. 이제 더 이상의 파도는 없을 줄 알았는데 03 : 20초부터 다시 밀려옵니다. 03 : 25초부터 나오는 치과 석션 같은 소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상승합니다. 아주 어지럽게. 귀를 망가트릴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03 : 39초가 되자 음악이 절정을 맞이합니다. 사운드의 움직임이 앞서 들었던 어떤 파트보다도 더 거대해지고 역동적입니다. 소리가 요동칩니다. 안전할 줄로만 알았던 킥마저 소리들에게 휩싸여 정신없이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모든 사운드가 마구 휘몰아칩니다. 여기서 끝장을 보겠다는 듯이. 04 : 23초부터는 요동쳤던 파도가 가라앉듯 감정이 가라앉습니다. 이렇게 음악이 끝나게 됩니다.
제가 만약 영상이나 그래픽을 다룰 줄 알았다면, 이 모든 장면을 시각적으로 아주 생생하게 묘사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너무너무 아쉽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제 말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셨죠? 소리의 움직임, 믹싱 엔지니어의 의도, 다시 말해 어떤 그림을 그리려고 했는지 말입니다. 이 음악이 파도가 치는 것처럼 들리지 않으셨어도 괜찮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장면이 연상되지 않았어도 괜찮습니다. 아니요. 오히려 좋습니다. 소리의 움직임이 어떤 식으로 변화했는지만 잘 관찰하셨으면 됩니다. 그리고 소리의 움직임을 이해했다면, 파도를 상상하든 무협 영화의 한 장면을 상상하든 그건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움직임으로 인해 연상된 장면 -> 무엇이든 가능. 저는 ‘저’라서 파도를 상상했던 겁니다. 어떤 장면을 상상하셨건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단, 소리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정확히 캐치했다면요.
각주 : 대개 일렉트로닉 음악은 알콜 & 섹스 & 드러그를 표현합니다. 거기서 영감을 얻거든요. 베니 베나시가 의도한 그림은 어쩌면, 성관계 시 움직임을 표현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남자 보컬과 여자 보컬이 계속해서 되뇌는 가사를 들어보면, 그쪽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남녀가 번갈아 가면서 ‘Push me, and then just touch me, Till I can get my, Satisfaction’이라고 말하는 거 보면 말이죠. 약간…… 사이버 성관계? 일렉트로닉 섹스? 이런 느낌이기도 하네요. 어떤 시각, 아니 청각이든 좋습니다. 사소한 오해는 또 다른 창의력을 불러일으키니까요.
여기서 잠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들은 음악을 유튜브로 다시 들어볼까요?
소리가 어떠세요? 아까보다 좀 먹먹하고, 답답하게 들리죠? 오래전 업로드 된 영상일수록 음질이 낮습니다. 그게 설령 공식 채널이어도 말입니다. 유튜브 뮤직이 생기면서 좀 나아지긴 했지만, 그 역시도 192k 음질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 이렇게 음악을 들어보니 어떠셨나요? 노래로 장면을 연상하다니, 재밌으시죠? 더군다나, 가사나 곡이 주는 느낌으로 장면을 연상하는 것이 아닌 사운드로 장면을 연상하다니. 사실은 사운드로 연상하는 것이 더 직관적입니다. 바이브는 추상적이지만, 사운드는 들리는 그대로거든요. 가사만큼이나 직관적인 것이 사운드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benny benassi presents the biz’의 ‘Hypnotica’를 2000년대 EDM 명반으로 꼽습니다. [Satisfaction]에서 나오는 테마 멜로디는 딱 하나입니다. 바뀌지 않습니다. 중간중간 변주가 있긴 하지만, 그건 멜로디가 변했다기보다는, 멜로디를 컷앤페이스트 한 것으로 들립니다. 테마 멜로디는 딱 하나뿐입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멜로디의 변화가 좀 있고, 코드 진행도 다채로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근데 ‘benny benassi presents the biz’의 ‘Hypnotica’에 수록된 트랙들은 그런 생각을 아주 깨부수다 못해 박살을 낸 앨범입니다. ‘Hypnotica’에 수록된 모든 곡은 사운드의 변화‘만’으로 듣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베니 베나시. 오직 사운드로만 조져(?)버리는 음악. 듣는 재미를 느끼셨다면, 베니 베나시의 ‘Hypnotica’는 꼭! 꼭! 꼭! 들어보세요. 그리고 여러분은 어떻게 들으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궁금합니다.
또 다른 베니베나시의 음악을 추천합니다. 이 곡은 영상과 음악이 아주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영상을 보면서 음악을 들으면, ‘아 이런 장면을 사운드에 담았구나’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특히 00 : 53초부터 00 : 59초는 사운드와 영상이 거의 한 몸처럼 움직입니다(아니 근데 유튜브네요?).
다음 이 시간에는 Flume이 리믹스한 곡 [You & Me]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 봬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