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로 음악 듣는 법 (5)
본문에 앞서 귀여운 토끼 그림 한 번 보고 가실까요?
혹시 이 그림 아시는 분 있을까요? Kim Krans라는 작가가 그린 ‘How a Bunny Sounds’라는 작품입니다. 이펙터를 표현하기 아주 적합한 그림이어서 한 번 가져와 봤습니다. 작곡가와 믹싱 엔지니어들은 사운드를 잘 가공하기 위해 위와 같은 이펙터들을 사용합니다. 요새는 작곡가가 믹싱도 겸해서 그 경계가 많이 모호해졌습니다. 그래도 작곡가와 믹싱 엔지니어가 하는 일은 완전히 다릅니다. 같은 이펙터를 사용하는데도 말이죠. 작곡가가 광물을 캐는 채광업자이라면 믹싱 엔지니어는 광물을 세공하는 세공업자라고 보면 됩니다. 마스터링 엔지니어는 이제 세공된 보석을 빤짝빤짝 윤이 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고, 금은방 주인이 이제 배급사, 유통사쯤 되겠네요. 다른 작곡가가 이 비유를 보고는 ‘아니지. 작곡가가 세공업자지. 수많은 코드를 내가 세공하고, 수많은 악기를 내가 세공해서 특이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데.’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맞는 말이죠. 다만 저는 작곡이란 행위가 근본이 되기 때문에 채광업자라고 비유했을 뿐입니다. 광물이 없이는 세공업자도, 금은방도 없으니까요.
수많은 이펙터 중 우리는 공간계 이펙터인 딜레이와 리버브만 알아볼 예정입니다. 물론 컴프레서나 디스토션, 리미터 같은 이펙터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음악을 만드는 법이 아닌 음악을 듣는 법을 알기 위한 것이니까요.
리버브와 딜레이가 뭘까요? 일단 리버브부터 알아볼까요. 리버브는 잔향입니다. 터널 혹은 성당 등 소리가 벽에 부딪히면서 생기는 잔향입니다. 주변이 허허벌판인 곳은 소리가 부딪칠 벽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잔향이 남지 않죠. 그러나, 벽이나 그와 비슷한 물건이 있다면 그 소리가 허공으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벽에 부딪히며 사방으로 튕겨 나갑니다. 이렇게 사방으로 부딪히며 청자의 귀에 들어오는 소리를 리버브라고 합니다. 리버브는 공간에 따라 소리가 달라집니다.
출처 : https://www.softdb.com/blog/what-is-reverberation-in-acoustical-analysis/
Reverberated Sounds는 Reverb이고 Dry Sound는 벽에 맞지 않고 다이렉트로 청자에게 가는 소리입니다. 어? 근데 에코는 뭐죠? 리버브는 위 그림처럼 사방에 이리저리 부딪힌 소리가 청자의 귀로 들어가는 소리를 말하고, 에코는 벽에 단 한 번 부딪히고 귀에 들어가는 소리를 말합니다. 음속은 0℃, 1기압일 때 331.5m/s입니다. 가로세로 10m인 방에서 벽에 단 한 번 부딪힌 소리는 레이턴시 없이 바로 들리겠죠. 다시 말해, Dry Sound와 Echo의 시간 차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벽이 굉장히 멀리 있다면 어떨까요? 우리가 산에서 ‘야호~’하고 외치면 메아리가 돌아오죠. 그것이 바로 에코입니다. 저 멀리 있는 산에 맞고 튕겨서 우리의 귀로 돌아오는 것이죠.
이 영상을 보시면, 소리가 대강 어느 지점에서 튕겼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영상 1초 부근에 내지른 소리가 2.5초 부근에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왔습니다. 소리는 1.5초에 500미터쯤 가니, 갔다가 돌아오는 시간(1/2)을 나누면 대강 250미터쯤 앞에 있는 벽(산이든 뭐든)에서 튕겨 나온 소리겠군요. 정말 대강입니다. 온도 기압 다 무시하고 대강 계산했습니다. 저 수학 못 해요ㅠㅠ
좋은 울림이 있는 곳은 아래의 영상의 소리와 같은 성스러운 리버브가 생성됩니다.
각주 : 교회를 지을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리버브였다고 하네요. 다들 아시다시피 기독교가 음악의 발전에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리버브라든지, 교회 선법이라든지, 클래식의 발전에도 기독교가 빠지지 않죠. 어쨌든.
공간에 따라 아래의 영상 소리와 같은 리버브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왜 리버브가 중요한 지 다들 눈치채셨을 겁니다. 바로 이 리버브 덕분에 음악에 공간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리버브만 듣고도 공간을 유추해 낼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지녔습니다. 전에 설명했던 ‘음색’과 같은 메커니즘입니다. ‘동굴’ 하면 떠오르는 리버브가 있을 것이고, ‘목욕탕’ 하면 떠오르는 리버브가 있을 것입니다. 건물이 빽빽한 길거리 역시 리버브가 존재하고, 도서관 안에서의 역시 리버브가 존재합니다. 물론 도서관 리버브는 방음 처리를 잘해놔서(흡음재 등등) 교회나 동굴처럼 마구 울리지는 않지만요.
우리가 아는 ‘공간’을 ‘음악’에 입힙니다. 우리가 그 음악을 듣는 동안 작곡가/믹싱엔지니어가 디자인한 공간에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죠. 리버브가 뭔지 몰라도 음악을 들을 때 ‘아, 이 노래는 어디서 부른 거 같아.’ 혹은 ‘어떤 느낌이야.’라는 것이 연상되죠? 그걸 연상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리버브입니다.
공간계 이펙터 중엔 딜레이라는 것도 있는데요. 딜레이는 말 그대로 지연입니다. 내가 지른 소리가 몇 초 뒤에 한 번에서 이론적으로 무한 번 나오게끔 만드는 플러그인이죠. 에코와도 비슷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딜레이는 따로 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이 역시도 리버브와 같이 공간감을 만들어주는 이펙터이기 때문이죠. 딜레이에 대해 설명하면 ‘역전앞’ 같은 상황이 벌어집니다. 한 말을 또 하게 되는 꼴이죠. 물론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설명할 거리가 생기지만, 우리는 음악을 듣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만 가져갈 거기 때문에 모르셔도 무방합니다.
자, 이렇게 딜레이와 리버브를 알아봤습니다. 이 딜레이와 리버브는 사실상. 당. 히 중요합니다. 음악은 리버브 + 딜레이로 말미암아 공간을 부여받습니다. 공간을 부여받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자, 일단 이 영상을 봐주세요.
만약, 이 영화들이 CGI 처리를 하지 않고 그린 스크린이 나오는 장면 그대로 상영했다면 어땠을까요? 반전 효과를 줘서 웃기는 패러디 영화나, 비꼬는 장면이 아니고선 저 그린 스크린 장면을 그대로 사용하진 않겠죠. 다큐멘터리라면 또 가능하겠네요. 이처럼, 영화는 가상(혹은 현실)의 어떤 ‘공간’을 만들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합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로듀서/엔지니어가 작업을 시작할 때, 이 노래의 공간이 어땠으면 좋겠다 혹은 어떤 공간이 적합하겠다,라는 아이디어로 작업을 합니다. 전에 보았던 이 사진 기억나십니까?
프리퀀시로 상하, 패닝으로 좌우, 볼륨으로 앞뒤를 조절한다는 건 이제 이해합니다. 그럼, 그 피사체(각 악기)들이 있어야 할 장소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 장소를 설정해 주는 것이 바로 리버브와 딜레이입니다. 다시 영화로 예를 들겠습니다. 악기나 목소리가 바로 등장인물, 프리퀀시, 패닝, 볼륨이 등장인물들이 서 있는 위치, 마지막으로 리버브 + 딜레이 + 여타 다른 공간계 이펙터들이 등장인물들이 서 있는 공간이 됩니다. 이렇게 한 곡이 완성되죠.
이로써 저희는 음악을 들을 기본 소양을 모두 갖추게 됐습니다. 소리가 상하좌우앞뒤로 움직인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리버브에 대한 이해도 갖췄습니다. 마지막으로 딱 하나, 딱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바로 악기(목소리 포함, 음악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입니다. 악기란 무엇일까요? 악기가 가진 톤이란 또 무엇일까요? 톤, 다음 시간엔 그 오묘한 것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