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olumnlist Feb 13. 2024

프리퀀시의 상승, 위치의 변화

[flume - You & Me]

저번 시간엔 사운드의 울렁거림(?), 움직임을 들어봤습니다. 그 움직임이 어떤 그림, 어떤 장면을 연상시키는지까지도요. 제 해석뿐 아니라, 각자의 해석도 생겼을 겁니다.

이번에 함께 들어볼 곡은 베니 베나시의 곡처럼 역동적인 움직임은 없습니다. 다만 사운드의 움직임이 직관적입니다. 그래서 그림도 더 쉽게 연상되죠. 거두절미하고 가보겠습니다.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반복적인 소리 들리시나요? 살짝 오른쪽에 있고 약간 먹먹합니다. 귀가 좋으신 분들은 듣자마자 바로 알아채셨을 겁니다. 바로 스트링 소리였습니다! 먹먹했던 스트링 소리가 점차 선명해지면서 위로 상승합니다. 마치 얇은 실크 천으로 덮여있던 무언가(저는 태양이 연상됩니다)가 공중으로 떠오르는 느낌입니다. 어? 잠깐. 소리가 오른쪽에 있고 점점 선명해진다? 이거 일출 같지 않습니까? 동틀 무렵이 연상됩니다. 00:14초 이후로는 여성 보컬이 등장합니다. 보컬이 엄청 거대합니다. 엄청 거대한데, 또 굉장히 멀리 있는 것 같습니다. 태양을 연상시키는 스트링 사운드 뒤에 있습니다.

근데 여러분, 곡이 진행될수록 보컬이 벌어지는 게 들리십니까?    

이랬던 녀석이  

 

요렇게 벌어졌다가.    

요렇게 열렸습니다.     


00 : 25초부터는 완벽히 양쪽으로 갈라졌습니다. 어? 가운데에 있다가 양쪽으로 갈라지는 것, 가운데에 있다가 양쪽으로 갈라지는 것? 뭐가 떠오르세요?     

이 느낌 아닙니까? 가운데에 모여있던 게 양옆으로 벌어지는. 



자, 00 : 13초부터 00 : 36초는 보컬이 양옆으로 갈라졌습니다. 즉, 문이 열린 것이죠. 00 : 38초에 스트링이 나옵니다. 스트링은 강이 흐르는 것 같은 모양새입니다. 태양은 그대로입니다. 목소리도 정중앙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림으로 보겠습니다.              

이런 느낌입니다. 목소리가 중앙보다 좀 높은 위치에 있고 바닥엔 강이 흐릅니다. 하늘엔 해가 떠 있습니다. 왼쪽에는 강과 같은 재질의 또 다른 물줄기가 흐릅니다.



모양새가 갖춰진 사운드가 첫 번째 절정을 맞이하려 합니다. 01 : 04초에 등장하는 강력한 퍼커션이 서문을 엽니다! 후렴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 악기가 몇 개 없습니다. 하나하나가 마치 마동석처럼 너무 거대해서 꽉 차게 들립니다. 마동석? 어? 사운드가 저희를 때리는 듯합니다? 특히 01 : 06 - 01 : 07초에 나오는 하이햇은 마치 두개골 절개를 할 때나 쓸법할 의료용 그라인더 소리처럼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소리 자체가 뇌를 자극하듯 찌릿찌릿합니다. 하이햇이 강렬한 소리를 내기 전, 01 : 05 - 01 : 06초를 집중해 주세요. 좌우에서 엄청난 사운드가 밀려옵니다. 슈와아악-하고 다가오는 소리가 있죠?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여하튼 특이한 소리입니다. 이 소리는 01 : 06초에 나오는 하이햇 소리를 더 극적으로 만들어주기 위한 FX 사운드입니다. 자, 이제 후렴구를 전체적으로 들어볼까요?


리듬은 단순합니다. 4비트 드럼에 정박과 엇박을 오가는 16비트 신시사이저, 중간중간 아주 짧은 탐의 Fills까지. 리듬 자체가 단순하니 하이햇 소리가 더 극적으로 들리고, 소리 하나하나가 더욱 묵직하게 표현됩니다. 01 : 24초부터 01 : 30초는 흥분됐던 감정을 정리시켜 줍니다. 다음 프레이즈를 위해서요. 양 끝단에 있는, 길이(릴리즈)가 긴 스트링이 여전히 텐션을 유지해 줍니다. 그 덕분에 목을 조르기 위해 쥐었던 멱살을 푸는 느낌이 듭니다. 


정리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해가 떠오르고, 문이 열리고, 아래엔 물이 흐릅니다. 후렴구에서는 거대하고 파괴적인 소리들이 청자를 때리는 듯합니다. 아, 이거 말을 번복해야겠군요. 해와 물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마치, 복싱 경기를 관람하는 것 같습니다. 해인 줄 알았던 소리는 선수가 권투 가운을 벗고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고, 보컬이 양옆으로 갈라지는(문이 열리는) 것은 경기장 입구에서 선수 입장문이 열리는 것, 물이 흐르는 것 같았던 스트링 사운드는 알고 보니 관객들의 환호성이었습니다. 그렇게, 입장한 두 선수가 후렴구에서 치고받고 싸우는 겁니다. 펀치를 날리고 가끔 턱을 정통으로 맞아 머리가 띵 울리는 것을 하이햇 사운드로 표현한 것이죠! 두개골 절제를 위한 그라인더가 아니었습니다. 이건 권투 경기였던 겁니다!

각주 : 아니, 그러면 환호 소리를 넣으면 되지 않냐? 그럼 더 직관적이지 않냐? 뭐 이렇게 어렵게 꽈놓은 거냐? 하실 겁니다. 물론 실제 관중 소리를 넣고 경기 시작을 알리는 쇠공 소리를 넣으면 더욱 알아듣기 쉽겠죠. 하지만 예술성은 간접성과 비례합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현상을 물체에 빗대어 표현하죠. 수직 계단으로 연결된 부잣집으로 계층의 양극화를 표현한 봉준호(기생충), 하비에르 바르뎀으로 재앙을 표현한 코엔 형제(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남녀의 사랑을 홍콩 반환에 빗대어 얘기한 왕가위(중경삼림)처럼 말입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환호 소리와 펀치 맞는 소리, 권투 공소리를 넣으면 더욱 직관적일 겁니다. 근데 여러분, 그럼 그게 음악일까요? 근데, 그러면 더 이상 음악이 아닙니다. 그냥 현장을 녹음한 소리일 뿐이죠. 물론 비틀즈가 발매한 필생의 역작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선 실제 환호 소리가 나옵니다.      




사운드로 듣는다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것도, 그리 예술적인 접근법도 아닙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듣는 겁니다. 어떤 독자분께선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You & Me 들어보니까 복싱 경기 같지 않던데? 나는 이 노래야말로 항해하는 것 같은데?’

그 의견이 맞습니다. 전에 설명했듯이, 사운드를 이해했다면 해석의 방향은 무궁무진하니까요. 단지 그것입니다. 제가 복싱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복싱으로 이해하지 않았을 겁니다. 말 자체가 모순이죠? 들리는 대로 들으라고 해놓고, 해석은 자기 멋대로 하라니. 맞습니다. 사운드로 듣는다는 건 여러모로 희한합니다. 사운드가 그려놓은 그림을 저 멋대로 해석하니까요. 내가 했던 경험대로, 내가 처한 환경대로 이해하니까요. 근데, 어떤 예술이 안 그렇겠습니까? 해석은 시청자와 독자의 몫입니다. 창작자는 그저 질문거리를 주는 사람일 뿐입니다. 이건 제가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자신의 영화 제목의 뜻을 밝히지 않는 것처럼,

조커의 토드 필립스 감독이 영화의 해석을 말하지 않는 것처럼요.     


자유롭게 이해함. 음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해놓은 소리가 있고 정해놓은 멜로디가 있습니다. 다만 해석은 여러 갈래로 나뉩니다. 해석의 여지가 많을수록, 좋은 예술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잡설이 길었네요. 사실 이 얘기는 마지막 글에서 더 자세히 할 예정이었는데, 미리 쪼끔 땡겨 쓴 셈 치죠, 뭐.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여러분이 사운드의 움직임을 포착했다면, 어떻게 해석했든 여러분의 해석이 옳습니다. 저는 단지 제 해석을 써놓은 것뿐이고요. 중요한 건, 제 해석조차 헛소리로 치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불살조(殺佛殺祖) 해야 한다는 것이죠.

해석이 어떻든 여러분이 맞습니다. 그 사소한 오해가 새로운 예술을 만드는 데에 좋은 양분이 되니까요. 정답을 찾지 마세요. 정답을 그냥 만드시면 됩니다. 음악은 시험 문제가 아니니까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이전 08화 역동적인 사운드의 움직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