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losure - Running]
자, 참 먼 길을 왔습니다, 그쵸잉? 오늘의 곡은 Disclosure의 [Running]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길 겁니다. ‘왜 계속 일렉트로닉 음악만 해요?’ 그 이유는 일렉트로닉 음악이 사운드로 음악 듣기에 최적화된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일렉트로닉 작곡가들은 믹싱과 마스터링을 본인들이 합니다. 사운드의 움직임까지도 작곡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장르들보다 특히 일렉트로닉 음악의 사운드가 굉장히 직관적으로 들립니다. 이렇게 일렉트로닉으로 다져진 귀를 가지고 타 장르를 접하는 거죠. 거두절미하고 곡 들으러 가시죠!
이번 곡은 단순합니다. 베니 베나시와 플룸으로 다져진 귀라서 악기가 어디 있고, 어떤 모양인지 대충 감이 오실 겁니다. 그럼에도 왜 이 노래를 선택했냐? 이 노래의 엄청난 공간 변화 때문입니다. 00 : 00~01 : 33초까지의 흐름은 단순하지만, 막힘없이 시원한 속도감이 있었습니다. 00 : 46초부터 나오는 보컬은 급박하게 말을 쏟아내는 것처럼 반짝거립니다. 이유는 보컬의 위치에 있습니다. 보컬이 어디 있냐면요!
이런 식으로 양옆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번갈아 가며 나오고 있습니다. 핑퐁 딜레이 기억하시죠? 그 핑퐁 딜레이의 텀이 눈 깜빡이는 속도보다 빠르게 번갈아 나오는 느낌입니다. 게다가 깜빡거리는 텀이 너무 짧아서 끊기지 않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죠. 딜레이뿐만이 아닙니다. 원음(목소리) 역시 빠르게 깜빡거립니다. 딜레이와 원음이 잘 버무려져 마치 반짝이는 것처럼 들립니다.
01 : 18 - 01 : 30는 모든 소리가 전체적으로 상단에 위치합니다. 마치 모든 소리가 공중부양한 느낌이 들죠. 무중력 상태처럼요. 그 후, 01 : 30초부터 중력이 다시 작용했는지 소리가 확 낮아집니다. 공중에서 맴돌던 보컬 피치가 떨어지고, 중심을 단단히 잡았던 신시사이저 사운드도 바이킹이 낙하하듯이 아래로 빠르게 낙하합니다. 그리고 나오는 FX 사운드. 01 : 32 - 01 : 33초에 나온 뾰로롱-하는 FX사운드가 들리시나요? 이 소리를 기점으로 공간이 확 변합니다. 아까까지는 Wet했던 공간이 한순간에 Dry해지고(리버브의 양에 따라 Wet과 Dry로 나뉨), 잔잔한 물결처럼 잦게 찰랑이던 사운드의 움직임은 해일처럼 거대해졌습니다. 일반적인 트램펄린은 위아래로 뛰지 않습니까? 하지만, 01 : 33초부터 나오는 후렴구는 앞뒤로 트램펄린을 타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신시사이저 소리가 깊게 빠졌다가 갑자기 튀어 오르고 또 깊게 빠졌다가 튀어 오릅니다. 밀당을 쫄깃하게 하는 것처럼요. 가상의 농구공을 상상하고 튕겨보세요. 손이 허공에서 바닥 쪽으로 향할 겁니다. 자, 이제는 위아래가 아닌 눈앞으로 손을 가져가세요. 모니터와 나의 얼굴 사이에 손을 두고 공을 튀기듯 앞뒤로 흔들어보세요. 후렴구의 신시사이저 박자에 맞게 손을 앞뒤로 흔들어보세요. 때로는 모니터 쪽으로 깊게 들어가고, 때로는 예측 불가능하게 얼굴 쪽으로 튀어 오릅니다. 신시사이저 움직임이 손의 움직임과 비슷하죠? 신시사이저라는 트램펄린이 마구마구 움직입니다. 나머지 악기들도 그의 움직임에 따라 요란스레 변화합니다. 특히 탬버린 사운드가.
자, 이쯤 되면 여러분이 제 설명 없이도 연상되는 사운드의 그림이 있을 겁니다. 이번엔 한 번 스스로 연상해 볼까요? 이 음악은 어떤 모양 같아요! 이 음악은 어떤 장면 같아요! 이 음악은 별 감흥이 없어요 등등. 결국 여러분이 말한 그림이 정답이니까요.
이번 편은 짧습니다. 이 곡은 사운드의 변화보다는, 벌스와 후렴구에서 명확하게 나뉘는 공간의 변화에 초점을 맞췄거든요. 그 공간의 변화가 제 설명 없이도 완벽하게 느껴졌을 테니, 제가 첨언할 말이 없는 것이죠. 여러분이 [running]을 듣고 공간의 변화를 완벽하게 느끼셨다면 충분합니다.
혹시, 그간 여러분이 들었던 노래 중, ‘이 노래의 사운드 변화도 아주 재밌고 신선했어요!’ 했던 노래가 있다면 알려주시겠어요? 저도 들어보고 싶어요! 자, 그럼 다음 시간에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