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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lumnlist Feb 15. 2024

공간을 상상하게 만드는 음악

[radiohead - weird fishes/arpeggi]

제가 사랑하는 라디오헤드. 그들의 곡 중에서도 [Werid Fishes / arpeggi]를 참 좋아합니다. 가녀린 소리들이 서로 부딪치며 깨지고, 상처 입고 서로 결합하더니, 종국엔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거든요. 크게 보면 인생, 작게 보면 추상적인 사랑이 연상됩니다. 아, 추상적이면 안 되는데 말이죠. 추상적인 느낌을 ‘완벽’하게 주는 곡들이 있습니다. 특히 Radiohead의 7집 ‘In Rainbow’가 제게 추상적인 느낌을 많이 전달했었습니다.     



처음 나오는 드럼이 참 예쁩니다. 아주 고와요. 킥의 잔향이 오른쪽으로 쫙 퍼지면서 파동을 일으킵니다. 드럼 리듬이 1,3박에 툭툭 끊기는 듯한 느낌도 아주 좋아요. 뭔가 턱턱 걸리면서 넘어가는 느낌이에요. 사실, 가운데에 있는 본래의 킥 사운드보다, 오른쪽에 있는 킥의 잔향이 더 거대하게 들립니다. 그래서 사운드 하단 부분이 단단해진 느낌입니다. 00 : 09초부터 나오는 베이스와 기타 역시 아주 고와요. 베이스와는 달리 기타에는 크런치가 아주 살짝 걸려있어서 좀 거친 느낌이 드는데, 곡 전체의 분위기를 해칠 만큼 거칠지는 않습니다. 그냥 조금 돋보이는 정도? 00 : 27초에 나오는 기타는 왼쪽에서 나오네요? 쭉 들어봅시다. 공간이 어딘지, 지금 사운드의 전체적인 그림이 어떤 모양인지 상상해 보세요.     

위치는 이렇게 되겠네요. 다만, 중앙에 중첩된 악기들이 많습니다. 이 악기들이 서로 맞물려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모양입니다. 드럼 리듬이 가장 선명한 움직임이고, 그 드럼 리듬을 감싸 돌아가는 부드러운 톱니바퀴인 기타와 베이스가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원활히 맞물려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중간중간 헛돌다가 아귀가 맞아 거대하게 돌아가고, 또다시 헛돌다가 한 번 맞아 다시 거대하게 굴러가는 듯합니다. 

각주 : 톱니바퀴처럼 보이는 이유는 바로 박자에 있습니다. 드럼은 4/4박자로 계속해서 진행되지만, 기타는 3/8박자와 5/8박자로 진행됩니다. 자, 리듬 역시 사운드의 일종입니다. 특히 리듬 악기들은 신시사이저 악기와는 다르게 소리가 사라지는 구간이 존재합니다. 일반적으로 스네어는 2/4박마다 한 번씩 등장하죠. 그렇게 되면 소리가 나오지 않는, 다시 말해 비는 구간이 존재합니다. 화면에 인물이 등장했다가 사라지면 장면의 느낌이 바뀌듯이, 사운드 역시 소리가 등장했다가 사라지면 연상되는 그림의 모양이 변합니다.


00 : 58초에 나오는 톰 요크의 흐물흐물한 보컬이 등장합니다. 보컬의 리버브가 상당합니다. 마치 바닷물이 없는 해저 동굴에서 부르는 느낌입니다. 바닷물이 없는 해저 동굴? 그게 존재해? 네. 음악이잖아요. 01 : 48초부터 나오는 새로운 기타는 오른쪽에서 나오네요. 모든 소리가 가녀리고 부드럽습니다. 살짝만 눌러도 부서질 것 같은 유리 같달까요? 신식 물건에 비유하자면…… 누르면 파사삭하고 부서질 것 같은 탕후루 같달까요? 지금까지의 모양새를 봅시다.    

리버브가 특히 거대합니다.     


쉽게 깨질듯한 소리들은 02 : 39초에 절정에 다다릅니다. 마치 장식이 많이 달린 샹들리에가 서로 부딪치며 나는 소리 같지 않습니까? 강렬하지만 날카롭고, 날카롭지만 아름다운 부딪침 같습니다. 가녀린 소리들은 점점 단단해집니다.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점차적으로 강해져서, 처음 부분과 비교해 보니, 생판 다른 소리처럼 느껴집니다. 


03 : 04초부터는 보컬이 드라이해집니다. 동굴에서 벗어나 수면 위로 올라온 것 같네요. 곡이 진행될수록 보컬을 감싸고 있는 소리들이 보컬을 잡아먹기 시작합니다. 턱밑까지 차오른 물처럼, 보컬이 목만 내밀고 묻혀버립니다. 


03 : 42초부터 소리들이 굉장히, 굉장히 제각각입니다. 오른쪽과 왼쪽, 심지어 가운데에서도 종류가 다른 소리들이 나옵니다. 특히 오른쪽에 나오는 소리가 가장 거대합니다. 만약,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싱크홀 아래로 떨어지면 어떨까요?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요? 가운데에 있는 소리는 바람 소리처럼 얇고 빠르게 제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갑니다. 왼쪽에 있는 톰 요크의 목소리는 이 떨어짐을 공포스럽지 않게 만들어줍니다. 저는 계속해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끝없이 떨어집니다. 음악을 듣는 저는 엉덩이에 바짝 힘을 주고 팔걸이를 꽉 잡습니다. 추락하지 않기 위해서요. 그렇게 정신을 꽉 붙들고 있는 와중에, 04 : 25초에 톰 요크의 보컬이 나옵니다. 그는 말합니다. ‘i’ll hit the bottom, hit the bottom and escape.’ 사운드에서 추락을 느끼지 못한 청자들을 위해 친절히 가사로 설명을 덧붙이는군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래시제인 ‘Will’을 썼다는 겁니다. 지금 이 상황. 바닥을 치는 상황이 ‘미래’ 일 것이란 얘기죠. 그렇다면 지금은? 지금은 바닥으로, 한없이 추락하고 있단 겁니다. 거대한 싱크홀 아래로 몸을 던진 것처럼요. 바닥에 다다르면 탈출할 거랍니다. 그리고 05 : 09초. 바닥으로 내리꽂아진 청자들은 현기증을 느낍니다. 그래서인지 오른쪽에 들리는 사운드도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는군요. 울렁대고 꿀렁댑니다.


이렇게, 아름다웠던 소리들이 서로 부딪혀 깨지고, 박살 나고 결합합니다. 결국엔 이 모든 사운드가 아래로 추락합니다. 저는 [Weird Fishes / Arpeggi]에서 인생의 여정을 느낀 기분입니다. 아름다웠다, 부딪쳤다, 추락하는. 결합했다, 깨졌다, 다시 결합하고 갈라집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한 때일 뿐, 끝이 정해져 있습니다. 추락하고, 탈출하죠. 이 곡에서 말하는 ‘Escape’란 무엇일까요? 탈출? 혹시, 죽음은 아닐까요? 전체적인 가사를 확실히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전 영국인이 아니니까요. 다만, 어느 정도 불교 교리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불교의 윤회를 모티브로 작업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자, 오늘은 일렉트로닉 곡이 아닌, 락(이라 해야 할지…… 예술 작품이라 해야 할지……) 밴드의 곡을 들어봤습니다. 곡 자체가 굉장히 심오하죠? 직관적이지도 않거니와 추상적으로 해석해야 할 여지가 다분했습니다. 저는 굉장히 추상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해석하셨나요? 제가 늘 말했듯, 어떻게 해석하든 여러분의 해석이 옳습니다. 어떻게 해석하든지 간에 이번 곡, [Weird Fishes / Arpeggi]는 다른 곡에 비해 고민할 거리가 좀 많을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이 벌써 마지막입니다. 5주간의 여정이 어떠셨나요? 마음에 드셨나요? 혹은 좀 더 알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아직도 ‘정답’인 사운드를 찾아 헤매고 있나요? 정답이란 게 있을까요? 모든 건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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