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olumnlist Feb 20. 2024

아웃트로 : 모든 건 사실 여러분이 상상하는 대로입니다

사운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자, 오늘부터 앞으로 배웠던 말들을 다 잊어버리세요. 프리퀀시니 패닝이니 볼륨이니 소리의 원리니 톤이니 하던 것들을 모두 잊어버리면 됩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현상 이후에 나온 이론은 편의를 위해 붙인 이름일 뿐입니다. 근데, 이론에만 너무 몰두하면 현상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현상에 대한 의문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애초에 그런 거니까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도 중력이 왜 생기는지는 몰랐습니다. 그저 자연의 섭리라고만 말했죠. 아마 인류가 종말을 맞이하는 날이 오더라도 중력이 생긴 이유를 모를 겁니다.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이 우주를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것처럼요(종교인 분들 제외). 이처럼 사운드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론은 그저 그저 편의를 위해 붙여놓은 이름일 뿐입니다. 우리는 사운드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사운드로 음악 듣는 법’을 알아본 게 아닙니다. ‘사운드’로 음악을 들어보기 위해 알아본 것입니다. 이론에 몰두하면 현상을 놓칩니다. 여러분은 소리의 위치가 내게 어떻게 들리는지, 그로 인해 어떤 장면이 연상되는지만 알아내시면 됩니다. 그게, 그것이 제가 최종적으로 말하고 싶은 ‘사운드로 음악 듣는 법’입니다. 그 장면에서 영감을 얻는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작가의 의도라는 게 있습니다. 근데, 그건 작가의 ‘의도’ 일뿐입니다. 우리가 작가의 의도대로 해석해야만 할까요? 김영하 작가님이 알쓸신잡에서 한 말이 있죠.


‘똑같은 작품을 1,000명이 읽으면 감상이 1,000개가 나와야 한다.’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곡가의 의도가 어찌 되었든, 듣는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곡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앞서 소개했던 Benny Benassi의 음악은 작가의 의도가 너무나 명확하고 확실합니다. 사운드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들려주거니와 숨은 의도도 없습니다. 그냥 ‘즐겨라’입니다. 사운드의 변화를 즐겨라. 내가 이끄는 음악 열차에 올라타라. 그냥 따라와라. 직관적인 메시지가 있는 반면에 예술성을 위해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메시지도 있습니다. 저는 모든 예술을 이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직관적인 메시지와 간접적인 메시지, 직관적일수록 대중적이고 간접적일수록 예술적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운드로 음악을 듣는 법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같은 음악을 들었어도,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기타의 거친 소리를 들으며 거대한 쇠공을 상상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거칠게 뭉쳐진 철사 덩어리를 상상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 시선이 독특하면 독특할수록 예술적인 평론이 되는 것이고, 그 시선이 많은 이에게 공감을 얻는다면 대중적인 평론이 되는 것입니다. 예술이 더 고귀하고 높고, 대중적인 게 통속적이고 키치한 것이 아니란 겁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이게 전부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작성한 글들도 결국 제 청각, 시선으로 음악을 듣는 방법일 뿐입니다. 제 얘기가 개소리라고 생각이 든다면, 당신의 생각이 맞습니다. 결국 이건 저의 ‘의견’ 일뿐이니까요. 음악을 듣는 법을 정의 내릴 순 없습니다. 다만, 다양한 각도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하나의 개인적인 ‘방법’이라고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 의견이 일말의 대중성을 지니고 있어 다수에게, 특히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에게도 통용되는 방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방법이 변형되고 왜곡되고 부정당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새롭고 다양한 ‘듣는 법’이 생겨날 테니까요.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사실은 그냥 제가 음악을 듣는 방식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들으면 음악 감상이 더 재밌을 텐데……. ’라고 생각하면서요. 그 목적으로 글을 집필했었는데, 집필하면서 방향이 틀어지지 뭡니까? 지금 우리(전 세계적) 사회는 ‘정답’만을 강요합니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그래서 저 주인공이 왜 저러는 건데.’

‘그거 해서 뭐 할 건데.’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니까요. 결말 포함 영화/드라마/책 요약 영상이 왜 본 영화/드라마/책 보다 더 각광받을까요? 영화 결말해석 유튜버들이 왜 이리 인기 있을까요? 왜 정해진 정답만을 찾으려고 할까요? 왜 쓸데없이 나를 낮출까요?

‘이 예술 작품을 [이렇게] 해석했다고? 너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아니요. 아닙니다. 단지 여러 해석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게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고요? 뭐 어때요? 내가 그렇게 해석하겠다는데. 단언컨대, 위대한 작가 중, 몇몇을 제외하고는 틀린(다른이 아닌, 아예 틀린) 해석에 의의를 두지 않았을 겁니다. 정말 단언컨대. 내가 만들어냈다고 해도, 내 의도대로 해석되지 않을 거란 것을 알거든요.

각주 : 바그너의 음악과 나치즘을 결합시킨 히틀러는 틀린 해석을 한 것이 아닙니다. 악용한 것입니다. 틀린 해석과 악용은 다르죠? 웃긴 건, 그때의 독일인들은 그 악용에 찬동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히틀러의 연설에 동조했던 것이겠죠. 물론 바그너 본인도 유대인을 혐오했지만, 히틀러는 그의 음악들까지도 악용을 했습니다.

저 역시도 사운드로 음악 듣는 법이 ‘틀린 해석’이 아닌 ‘악용’으로 오해받을까 걱정 중입니다. 초고 때도, 퇴고 때도 계속해서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작업 중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바뀌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음악 듣는 법’엔 정답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정말 정답이 없습니다. 저는 그저 제 ‘일리(一理)’를 말한 것뿐입니다. 계속 강조해서 죄송하지만, 정말 정답은 없습니다. 어떤 예술 작품을 해석하든, 여러분이 해석한 것이 맞습니다. 틀린 건 없습니다. 그러니, 음악이든 미술이든 영화든 소설이든, 그냥 즐겨주세요. 여러분의 해석이 옳습니다. 사운드의 움직임, 그것이 명확하게 들렸다면, 그 위에 칠하는 색은 여러분의 상상력입니다. 사운드의 움직임은 그저 스케치일 뿐이고, 그 위에 색을 덮는 것은 여러분의 ‘사유’입니다.


5주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전 11화 공간을 상상하게 만드는 음악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