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국제개발에 나를 던졌다
사직 의사를 밝힌 내게 이사님은 몇 개의 회유책을 제안하셨다.
"혹시 휴가가 필요한 거라면 다녀오면 어때요?"
"연봉 조정이 필요한 거라면 얘기해 봅시다."
둘 중의 어느 것도 내 결정을 바꿀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안은 감사한 것이었다. 내가 그동안 일을 허투루 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받는 듯했다. 사직하는 와중에도 인정은 받고 싶은 마음이라니.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국제개발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유학을 가려고 한다는 말씀을 드렸던 것 같은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사님 입장에서 생뚱맞기도 하고 핑계로 들리기도 했겠다 싶다. 오랜 기간 같이 일해왔지만 그쪽에 관심이 전혀 있어 보이지도 않았던 사람이었으니.
몇 번의 대화가 더 오간 이후에 사직서가 수리되었다.
그리고 나는 백수가 되었다.
국제개발분야에 들어서는 길은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월드비전, 세이브 더칠드런과 같은 비정부기관(NGO) 혹은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에서 일을 시작하거나, 국제개발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을 한다. (요즘에는 KOICA YP, 대학생 UNV 등 더욱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잠시 간의 내 고민은 영국에서 국제개발학 석사를 하는 결로 물 흐르듯 귀결되었다. 스터디 모임을 하면서 공부라는 것에 대한 재미를 알았기 때문이었기도 했고, 스터디 그룹 사람들 대부분이 그 선택지를 택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주 유창한 영어 실력은 아니었지만, 외국계 회사에서 5년 정도를 일하다 보니 영어는 심리적으로 내게 장벽이 아니었다. 물론 심리적으로 부담스럽지 않은 것과 대학원 입학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IELTS 점수를 획득해야 하는 것은 별개의 얘기이다 (IELTS 점수 만드느라고 막판까지 고생했다)
이쯤 되면 공부를 선택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처럼 여겨지지만 스스로에게 내 결정은 생소한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하는 축에 속하긴 했지만 한 번도 공부가 재밌다고 여긴 적은 없었던 터이다. 내가 공부라는 선택을 하다니 그만큼 나는 국제개발이라는 영역을 알아가는 것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선택은 무모하기도 했다.
아직 학교에 지원을 시작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일반적으로 영국 석사과정은 매년 9월에 입학을 하는데 전년도 10월부터 당해연도 1월까지 지원서를 받아 4월 정도 경이면 합격자 발표를 하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진다.
내가 퇴사한 시점은 6월이었고 나는 아직 지원을 하지도 않았으니 한 번에 석사 과정에 입학한다고 하더라도 내게는 1년 3개월이라는 공백이 생긴 것이었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합격 통지를 받을 때까지 직장을 다니면서 시간과 돈을 버는 결정을 했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회사 다니는 시간에 국제개발에 대해 하나라도 더 공부하고 싶었고 경험하고 싶었다.
공부를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 없던 나는 내 삶에서 한 번도 그려보지 못했던 영국 석사 유학생이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