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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사심 없는 솔직한 자기소개

가장 나다운 나

“엄마, 좀 있다가 친구들과 만나서 놀기로 했어요!”

일요일 아침 9시,

아이가 이불속에서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며 말했다. 옅은 웃음을 머금고, 생글생글한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일요일은 아이에게 무척 행복한 날이다. 학교도, 학원도 안 가는 유일한 날이니까.(토요일도 수학학원에 간다.)

나는 애써 새어 나오는 기쁨을 감추며, ”그래? 같이 놀기로 했구나 “  대답했다.

친구들과 밖에서 노는 동안, 나는 나대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아이는 친구를 만나러 가고, 나는 근처 카페로 갔다.

즐겨 앉는 자리가 비어 있었다. 기분 좋게 커피를 주문했다.

언제나처럼 태블릿 거치대를 세우고, 아이패드를 올려놓았다. 블루투스 키보드까지 꺼내 놓으니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는 나만의 작업실이 만들어졌다.

‘이제 아트러너 지원서 쓰기를 시작해 볼까?‘

신청서, 자기소개서, 개인정보 동의서 3가지를 작성해야 한다. 자기소개서를 제외한 나머지 서류는 인적사항과 단순 질문으로만 되어있었다.

자기소개서라… 대체 얼마 만에 쓰는 거지?
마지막으로 쓴 게… 회사 입사할 때였으니…
와…2000년, 24년 만에 다시 쓰게 되다니…

조금 긴장한 상태로 신청서와 개인정보 동의서를 작성했다.

두둥. 드디어 자기소개서를 쓸 차례다.

자기소개서는 종이가 꽉 찰만큼 커다란 표로 채워져 있었다.

가장 위쪽은 ’자기소개‘, 중간은 ‘지원동기 및 활동포부’, 아래쪽은 ’아트러너사업을 통해 어떤 경험과 성장을 기대하나요?‘가 적혀있었다. 각 항목 아래에는 답변을 적는 커다란 빈칸이 있었다. 양식을 보는 순간 ‘이 넓은 공간을 무슨 말로 다 채우지?’하는 걱정이 들었다.


나는 요즘 대부분의 시간을 글을 쓰며 보낸다.

최근에 알게 된 ‘모닝페이지 쓰기’ 덕분이다. 모닝페이지는 매일 아침, 그 순간 생각나는 이야기를 종이 노트에 손글씨로 적는 것이다. 3장 정도 적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흘러 있다. 때로는 마음에 남은 일을 에세이로 쓰고, 읽은 책의 리뷰를 쓰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무언가를 쓰는 일이 낯설지 않은 요즘이다.

그럼에도 나를 소개하는 글을 쓰려니, 조금은 어색하고, 쑥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다양한 감정이 오갔지만, 떠오르는 생각을 퍼 올리고, 글자로 뽑아 내니 자기소개서 속 넓은 공간이 가득 채워졌다. ‘살면서 여러 번 지원서를 쓴 것 같은데, 이렇게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쓴 적이 있었나?’. 20년 동안 근무했던 회사의 지원서 쓰던 때가 생각났다.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틱한 지원동기를 찾아 헤매었고, 그동안 쌓은 스펙과 경험들을 놓칠세라 끌어 모으고, 부풀리고, 미화시켜 돋보이도록 가진 애를 썼었다. 지원서를 쓰면서도  ‘이건 진짜 내가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사심 없이 솔직하게, 지금의 나를 소개했다.

살아있는 동안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 했던 활동(그림 인스타그램 운영, 서울일러스트페어 참여, 굿즈 제작 등)으로  나를 이야기하고, 현수막에서 ‘아트러너 모집’ 문구를 보고 생각한 것(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림에게 받은 위로를 주위 사람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을 지원동기로 썼다.

맞벌이와 육아에 치여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사람들 가까이 다가가 ‘문화 예술활동을 통해 숨을 쉬게 해 주고 싶다’는 기대를 적은 후 마무리했다.


지원서를 다 쓰고 나니, 이상하게도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담백하게 나를 바라보는 기회가 된 것 같았다. ‘후회 없이 가장 나다운 나를 이야기해서일까? ‘이제 합격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미련 없이 지원서를 보냈다. 그리고 며칠 뒤 서류합격자 발표가 났다.

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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