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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꼭 닮은 우리

마음이 잘 통하는 사이

알람이 울리지 않았는데, 잠에서 깼다.

여러 번의 휴대전화 알람을 듣고서야 겨우 일어나는 평소와는 달랐다.

묵묵히 자기 일만 하던 심장도 왼쪽 가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눈길은 계속 휴대전화 화면으로 향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보이려 애썼다.

9시가 지나자, 기다리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2024 아트러너 최종 합격자 안내]
안녕하세요.
용인문화재단 문화도시팀입니다.
2024 ’아트러너‘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휴~ 이제야 숨 쉬는 게 편안해졌다.

기쁜 마음과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떨어질까 봐 남편과 아이에게는 비밀로 했는데, 대화중간에 자꾸 그 이야기가 나올 뻔해서 힘들었었다. 그중에서도 그녀와의 만남을 말할 수 없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인터뷰 대기 장소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았고,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우리는 인터뷰 시간이 같다는 것과 서로의 집이 걸어서 10분 거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중교통으로 힘들게 온 나에게, 그녀는 끝나면 본인의 차로 함께 가자고 말해주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우리는 주차장으로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저는 크몽에서 캐릭터 로고나 상업용 웹툰 같은 것을 주문받아 그리고 있어요. “

“그래요? 저는 캘리그래피와  일러스트 작업을 해요”

“혹시 인스타그램 있어요?”

“있어요. 그림공장 롭쓰에요, 팔로우하시면 저도 맞팔할게요”

“시간 괜찮으면 차 마시고 갈래요?”


그녀는 ‘용인문화도시플랫폼 공생광장’에 와본 적이 있다며, ‘리틀 포레스트’ 카페로 안내했다. 우리는 차를 마시며,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와 나, 모두 미술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그림을 그려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3~4년간 걸어온 길이 시간차를 두고  닮아 있었다. 우리는 인스타그램에서 그림 계정을 운영하고 있고, 네이버 그라폴리오와 일러스트레이터 커뮤니티 산그림 사이트에서 그림을 홍보하고 있으며, 핸드메이드 플랫폼 아이디어스에서 일러스트 작품을 판매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고민거리도 서로 이야기했다..

ㅇ 어떻게 하면 나의 그림을 세상에 알릴 수 있을까?
ㅇ 생계를 유지하며, 그림작업을 계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ㅇ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과 내가 좋아하는 그림 어느 쪽에 집중해야 할까?
ㅇ 더 좋은 그림을 그리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ㅇ 스토리가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오래전부터 혼자 했던 고민이었다.

답이 보이지 않았고, 지금 잘하고 있는지도 몰라서 답답하기만 했었다.

그런데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과 한, 두 시간 짧게 스치듯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개운한 마음이 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앞으로의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녀가 말했다.

 “올해는 더미 북을 한 권 만들어보려고요.”

더미 북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반가움에 되물었다.

“혹시 그림책 작업하고 계신 거예요?”

“네, 맞아요”

그러고 보니, 인터뷰 대기 장소에서 그림책을 읽던 그녀의 모습이 기억났다.

지나온 시간만 닮은 줄 알았는데, 살아갈 시간까지 닮은 건 아닐까?

나는 작년에 클래스101에서 ‘그림책 만들기’ 강의를 빠짐없이 모두 들었다. 23년 9월에는 매일 1장씩 그림책 속 한 장면을 상상하며 40일 동안 그렸고,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리고 올해 계획을 그림책 만들기로 정했었다.

“저도 올해 목표가 그림책 만들기예요. 신기하죠?

재밌게 읽은 그림책과 닮고 싶은 그림책 작가,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활동 등 끝도 없이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이의 하교 시간이 다가오니 이제  출발하자는 그녀의 말에 나도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가 있다고 대답했다. 알고 보니 우리의 아이들은 모두 6학년이었고, 우리의 나이는 한 살 차이였다. 헤어지는 게 아쉬워 전화번호를 나눴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친구가 전부였다.

싸우기라도 한 날이면 화해할 방법을 찾다 잠을 설치기도 하고, 친한 친구가 전학을 간다고 해서 펑펑 울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니 친구 말고도 중요한 것들이 계속 생겨났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가족이 가장 소중해졌다. 그리고 친구의 존재는 점점 흐릿해져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정도 아이를 키워고 나니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졌다.

가끔 학교 다닐 때 친했던 친구들을 만나지만 지난날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을 뿐, 변해버린 지금의 이야기, 앞으로의 이야기를 나눌 때면 ‘겉도는 대화를 하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더 어려울 테니 이제 마음을 나누며 살기는 어렵겠구나 생각했는데, 그녀를 만나고 나니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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